2026년 2월 17일 (화)
(백) 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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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오늘의 말씀(2/15) : 연중 제 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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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15 ㅣ No.188001

 

* 제1독서 : 집회 15, 15-20

* 제2독서 : 1코린 2, 6-10

* 복음 : 마태 5, 17-37(연중 6주 주일)

* <오늘의 강론>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주님의 지혜‘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지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신다.”(집회15,18)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지혜’“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1코린 2,7)로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주님의 지혜’는 ‘율법의 완성’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사실, 히브리인들은 시나이 율법을 통하여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하느님의 백성, 거룩한(의로운) 백성이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요 은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을 왜곡해서 그릇되게 지키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초기부터 안식일법, 정결법, 단식법 등을 통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하며 대립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율법의 거부자 혹은 파괴자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대체 ‘율법의 완성’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그러니 율법은 지켜질 때라야, 비로소 그 ‘행위 안에서 성취된다.’는 말씀입니다. 곧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에게서 율법이 실현된다 말씀입니다. 골 ‘실행으로 가르치는 이’에게서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곧 율법을 지키는 것, 실행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고 실행할 수 있을까?

에제키엘 예언자는 말합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에제 36,26-27)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주신 영으로 율법을 지키고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께 의탁하고 성령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곧 계명을 주신 분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그래서 <루카복음>과 <묵시록>에서는 ‘말씀을 지키는 이에게 행복이 선언됩니다.’(루카 11,28; 묵시 1,3). 그렇습니다. 결국, 사랑이 율법을 완성하는 지혜입니다. 곧 지혜는 사랑을 실행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실행’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요 율법을 완성하는 ‘새로운 의로움’인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새로운 의로움’을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여섯 가지로 제시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중 첫 번째 ~ 네 번째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살인, 간음, 이혼, 맹세에 대한 ‘새로운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째> 의로움에서 ‘실인’에 대한 것으로 외적 행동의 의로움을 넘어서, 죄의 뿌리인 내적 지향의 의로움을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율법의 본질이 ‘화해’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둘째와 셋째> 의로움에서도 ‘간음’의 내적 뿌리가 마음에 있음과 이혼이 불륜을 불러오는 뿌리임을 밝히시면서, 죄를 뿌리에서부터 잘라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곧 죄를 불러오는 마음의 눈과 손을 잘라버리라고 하십니다.

<넷째> 의로움은 ‘맹세’에 대한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뿐만 아니라, “아예 맹세하지 마라”(마태 5,34)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자신을 보증할 수 있으며, 우리는 진리인 것이 아니라 단지 진리에 응답하는 사람들이기에 “예”할 것은 “예”(ναι ναι)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οû οû)라고 응답하라고 하십니다. 곧 응답하되 맹세가 아니라 행동으로 응답하고, 행동하되 진리 안에서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그러니 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우리의 응답 곧 원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1독서>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집회 15,15)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주님!

말씀을 이루소서.

제 삶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복된 땅이 되게 하소서.

그 크신 사랑을 이루소서.

당신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폐지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지키고 키우고 실행으로 완성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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