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7일 (화)
(백) 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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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그가 당신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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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16 ㅣ No.188026

 

어느 부부가 결혼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죠.

"여보, 당신 나 사랑해?"

남편은 쑥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사랑하지." 하지만 아내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한다면 증거를 대봐. 요즘 내 친구들은 남편한테 다이아몬드 반지도 받고, 유럽 여행권도

받는다던데 당신은 뭐야?" 

 

남편은 고민 끝에 다음 날 아주 커다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아내는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죠.

그런데 그 안에는 명품 가방 영수증이나 비행기 티켓 대신, 두툼한 서류 한 뭉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남편의 생명보험 증서였습니다.

남편이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죽으면 당신한테 10억이 나와. 내 목숨을 건 이 증거보다 더 큰 사랑의 표징이 어디 있겠어?"

그러자 아내가 서류를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양반아! 당장 죽지도 않을 거면서 이런 게 무슨 소용이야?" 

 

우리는 웃지만, 사실 이 아내의 모습이 오늘 복음 속 바리사이들의 모습이자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또다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진정으로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상대방에게 거창한 표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발견하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젖은 눈동자, 무심코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 나를 바라보는 그 미세한 입꼬리의 떨림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사랑을 느낍니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전 재산을 내 명의로 돌려라"

혹은 "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위해 무릎을 꿇어라"라고 요구한다면, 여러분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악한 사람일 뿐입니다. 

 

실제로 이런 비극은 우리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최근 유행하는 '로맨스 스캠'이나 가스라이팅 범죄를 보십시오.

사기꾼들은 말합니다.

"내가 지금 급한 돈이 필요한데,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이게 우리 사랑의 증거야." 

 

이런 악한 요구에 넘어가는 이들은 사랑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사랑의 본질을 잊어버립니다.

"내 사랑을 증명해야 해"라는 강박에 빠져 재산을 다 털리고 인생을 바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비참함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을 증명하라고 압박하는 사람은 결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당신의 사랑을 연료 삼아 자신의 욕망이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악한 자는 결코 사랑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오직 숫자로 된 증거, 육체적인 굴복, 눈에 보이는 커다란 표징만을 탐할 뿐입니다.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법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그의 시 『오로라 리』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구는 하늘나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가시덤불은 하느님의 불로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사람만이 신을 벗는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 주위에 둘러앉아 블랙베리나 따 먹는다.』 

 

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길가에 핀 작은 들꽃 한 송이 앞에서도 발을 멈추고 창조주의 신비를 읽어냅니다.

하지만 마음이 악하고 무딘 자는 꽃을 밟으며 지나갑니다.

그리고 말하죠.

"이게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 금으로 만든 꽃이라도 가져와 봐. 그럼 믿어주지." 

 

개는 장미꽃의 향기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오직 먹을 수 있는 고기 덩어리라는 표징에만 반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끊임없이 "내 병을 고쳐주시면 믿겠다", "내 자식을 합격시켜주시면 하느님 사랑을 인정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세속과 육신에 갇힌 개와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자백과 같습니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평생을 바친 복자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 속에서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개종시킨 사람도 거의 없었고, 화려한 성당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사막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아침, 하느님께서는 나를 위해 태양을 띄워주셨고, 목마른 나를 위해 작은 오아시스의 물 한 모금을 허락하셨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은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신다.』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은 세상이 요구하는 표징, 즉 교회의 성장이나 기적의 숫자에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막의 고요함 속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듣고 말 한마디에서 그분의 뜻을 읽어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처럼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하느님을 볼 줄 압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처럼 주님을 시험하지 맙시다.

여러분이 오늘 성당에 올 수 있었던 건강, 오늘 점심에 먹을 따뜻한 밥 한 그릇,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앉아 있는 형제자매의 존재 자체가 바로 하느님이 보내주신 가장 확실한 표징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작은 것들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늘이 갈라지고 죽은 이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잠시 놀랄 뿐, 결코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 약속보다 더 큰 표징은 없습니다.

이 사랑을 알아보는 눈을 가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이용당하거나 버려지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고 행복한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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