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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진짜 복, 가짜 복 2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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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구정 설입니다. 어제에 이어 제목처럼 진짜 복, 가짜 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진짜 복, 가짜 복 이렇게 표현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이상하게 받아들이시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조금 후에는 이해가 되실 겁니다. 우리가 보통 말할 때 사용하고 표현하는 복은 이 세상 현세에서 조건과도 같은 복을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났을 때 경제적인 조건 이런 것 말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이 세상에서의 조건만으로 복을 한정해 복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복이 아닐 수 있고 또 복도 지지리도 없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복인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을 그리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이런 현상을 주위에서 많이 봤습니다.
제일 먼저 제 큰외삼촌 집 여동생 하나의 사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릴 때 잘못 돼 소아마비를 앓았고 그로 인해 다리를 접니다. 외삼촌은 평생 한이 될 정도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시집이나 제대로 갈 수 있을지 하고 말입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평범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회사원하고 결혼을 했고 애도 잘 낳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알았지만 남자 집안 주위 사람들이 많이 수근거렸다고 합니다. 뭐가 문제가 혹시 있는지 말입니다. 남자가 솔직히 아주 멀쩡했기 때문입니다. 얼굴도 아주 준수하게 생겼습니다. 회사도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인데다가 학벌도 아주 좋기 때문입니다. 여동생은 고졸입니다. 그냥 세상의 조건으로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조건과도 같습니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그애 남편을 봐온 결과를 보면 전혀 이상한 곳이 없을 정도로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 예의도 아주 깍듯하고 반듯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제가 집안 행사 모임에서 우연히 둘이 같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동생하고 어떻게 결혼하게 됐고 또 사랑하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자기에게는 다리 저는 것이 결혼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애가 미인도 아닙니다. 완전 시골애 같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저는 성이 안씨라 안서방이라고 합니다. 안서방은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꾸밈이 없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이 애도 제가 안서방이라도 하는 사람도 저와 조금 닮은 꼴이 있습니다. 사차원 같은 성격입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자랑 남자로 이야기하니 절대 비밀을 지켜달라고 하며 이야기한 게 있습니다. 그게 바로 여동생하고 결혼을 해 행복하게 해 준다면 복 같은 게 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안서방은 종교가 완전 불교는 아닌데 불교쪽에 가깝습니다.
얼마 전 40년 만에 이웃집 누나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 누나를 40년 만에 우연히 만났는데 처음에 얼굴을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다리를 저는 걸 보고 확신했습니다. 누난 저를 잘 못 알아봤습니다. 처음엔요. 제가 누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그분 딸이 아니냐고 하니 그제서야 누나가 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누나 어머니를 통해 소식만 알았지 40년 만에 봤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주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누나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돌아가신 지 좀 됐습니다. 저는 이 누나가 초등학교 때부터 좀 안타까워 제가 누나 가방을 학교 갈 때 많이 들어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누나 어머니인 아주머니께서 저를 어릴 때부터 엄청 좋아했습니다. 딸만 둘이라 어릴 때부터 친아들 이상으로 생각하고 양아들을 삼고 싶을 정도로 애지중지하게 생각해 주셨던 분입니다.
언제 한번 명절 때 제가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시더군요. 제가 간난아기 때부터 성장하는 걸 보시면서 애가 좀 독특했다고 하셨습니다. 애는 앤데 애 같지가 않았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정말 우리집이 아들이 많으니까 수양아들로 삼고 싶어했던 건 사실이었다고 했습니다. 학교 마치고 돌아가면서 슈퍼를 하셨는데 과자 같은 걸 사러가면 저는 돈도 받지도 않으시고 제 머리를 아주머니 가슴속으로 손으로 끌어안아주시면서 "만용아, 내 아들이었으면 참 좋겠다"고 늘 하시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제 이름을 항상 잘못 불러서 그냥 어른이니 그렇게 할 수 있지 하고만 넘어갔습니다. 저를 아들 삼고 싶은 마음도 사실이고 또 하나는 그게 안 되면 사위라도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누나 가방을 들어주고 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뭔지는 모르지만 아주머니 보시기에 심성이 남달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사위로 삼을 수 있다면 누나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뭉클했습니다.
어릴 때 왜 그토록 저를 보기만 하면 가슴으로 제 얼굴을 끌어안으시면서 "내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노" 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됐던 것입니다. 제 이종 여동생과 이 옆집 누나를 보면서 물론 지금은 현세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처음엔 이런 조건이면 힘든 인생을 살 것 같아서 부모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나중 결과를 보면 어쩌면 일반 사람보다도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제 이 결과를 놓고 복이라는 관점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봤을 때 말입니다. 둘 다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하는 점을 하나의 복이라고 전제하고 생각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웃집 누나 남편은 제가 만나보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추측하기에 이웃집 누나 남편도 제 이종 여동생 남편과도 비슷한 뭔가 공통점이 있을 겁니다. 그렇치 않고서는 일반적인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인연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런 남자를 만나는 복을 얻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게 만약 복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바로 제가 보기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볼 수 없는 그런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복이 있기 때문에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래서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짜 복과 가짜 복은 인간의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면서 지금 자신의 상태를 보고 복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의 조건에서도 그런데 우리는 하늘나라를 동경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을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복과는 견줄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 현세에서, 인간적으로 복이라고 생각했던 복이 있다면 그 복은 자칫 그 복에 겨워 하늘의 복을 얻는 데 눈이 가려워진다면 그건 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선 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하나의 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복이 진짜 복이 될 수가 있을 겁니다. 하늘의 영복은 바로 이와 같은 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게 진실이라는 걸 증명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성경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가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산상수훈을 잘 묵상해보면 제 말씀이 허황된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런 걸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보고 사차원이라고 해도 그렇게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성당에서 연상 누나를 좋아했을 때 그때 마흔에 영세를 받고 해가 바뀌었으니 마흔하나였던 때인데 그때 제 대부가 하시는 말씀이 경상도 표현으로 "와 할매를 좋아하노"였습니다. 누나랑 열두살 차이인데 그럼 쉰셋인데 쉰셋을 할머니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단순히 좀 과장해서 표현을 했던 것이죠. 그 표현은 달리 표현하면 마치 제가 4차원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누군가가 말을 해도 저에게는 위로가 되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말씀도 어떤 경우는 인간의 귀로 들으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4차원 같은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예수님을 4차원인 분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기 때문에 4차원이라고 하면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 게 사실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저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4차원이라고 해도 분명 하느님은 4차원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하늘나라를 동경하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보는 눈으로 그걸로 복이라는 걸 재단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건 가짜 복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지지리도 없는 복이라고 생각하는 그 복이 진짜 복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어떻게 생각하고 살면 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복은 그냥 땅의 복입니다. 그 복은 사라지는 복입니다. 우리가 유한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영원의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영복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주는 그 행복은 지나가는 행복이고 덧없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만 하늘의 복이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사람이 진짜 복 있는 사람인 것이 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언젠가 하늘나라 가면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게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희망하며 살면 이 세상이 힘들긴 힘들어도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나의 운명이 복이 없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하늘의 영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모두 그런 희망으로 하느님을 믿고 끝까지 예수님 포도나무가지에 잘 매달려 있어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자녀가 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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