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8일 (수)
(자) 재의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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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백일 붉은 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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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17 ㅣ No.188044

 

또다시 한해가 돌고 돌아 설날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한적한 어촌에도 오랜만에 명절을 쇠러 온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한적하던 시골집 마당마다 승용차들이 두 세대씩 서 있으니 사람 사는 분위기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는 어떻게든 만사 제쳐놓고 먼 길 달려가곤 했었는데, 한분 한분 떠나시니,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일이 없어 편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명절로 인한 설렘도 없고 분위기가 없으니 허전하기도 합니다. 
 
설날 아침 또 다시 떡국 한 그릇씩 받아들며 다시금 한 살을 더 먹게 되는군요. 
어린 시절, 어떻게 해서든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싶은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정반대입니다.
올해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세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나이 먹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혈기왕성할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목숨 걸기도 하고, 큰 의미 없는 일에 핏대 세우기도 참 많이 했었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은 포기가 되니 참 편안합니다. 
 
아웅다웅, 바득바득 살다가도, 상주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하면서 즉시 태도를 바꿉니다.
앞장서는 것도 좋지만 뒤에 서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로 열 받다가도 즉시 이렇게 생각을 바꿉니다.
“그래 봐야 나만 손해지. 인생 뭐 있어? 적당히 즐기면서 사는 거지.” 
 
공동묘지에 가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무덤이 줄지어서 있는지 모릅니다.
다들 한때 나름대로 한 가닥씩 하셨던 분들입니다.
다들 떵떵거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분들에게도 보송보송 솜털 같던 시절, 꽃 같은 시절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덩그러니 흙무덤 하나, 그 속에는 퇴색된 유골만이 몇 평 남짓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2 독서인 야고보서의 말씀, 백번 생각해봐도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수명이 길다 하더라도 100세를 넘기기 힘듭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백일 붉은 꽃이 없습니다.
오늘의 아름다움, 지금 이 순간의 상승 무드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이 꿈결 같은 행복, 이 순간의 축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도 잘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순환의 법칙은 때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순간, 꽃 같은 젊음도 가고, 인생의 절정기도 가고, 그 좋았던 시절도 가고, 결국 우리 앞에 남게 되는 것은 시들고 메마른 육체, 그리고 임박한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예외적으로 특별대우를 받게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깨어있는 종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는 바처럼 주님의 오심을 잘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사람들과 달리 죽음에 대한 시각이 철저하게도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 죽음으로 인해 끝입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죽음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 그간 일궈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다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앙은 우리에게 죽음을 준비시킵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죽음은 결코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임을 일깨워줍니다. 
 
죽음은 나약한 우리 인간과 사랑 지극한 하느님이 온전히 합일되는 감사의 순간입니다.
죽음은 부족한 우리 존재가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충만히 실현되고 완성되는 은혜로운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신앙인들과는 달리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힘입어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절망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희망에 찬 또 다른 출발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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