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7일 (금)
(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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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2월 25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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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25 ㅣ No.188171

김건태 신부님_십자가는 회개와 지혜의 표징

 

오늘 예수님은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를 ‘악한 세대’로 규정하십니다.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 사명에 뛰어드시면서, 예수님은 말씀과 행적으로 제자들과 군중을 가르치셨으며, 그 가르침의 목적은 사람들이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그 가르침을 보증하기 위하여 그 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표징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꼭 한 가지, 회개뿐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많은 예언자를 만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언자들은 모두 참된 예언자들이지만, 거짓 예언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가름할 때, 그 잣대는 ‘회개’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할 때, 이 백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예언자가 파견된다는 점에서, 예언자의 설교 주제는 회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언자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파견되어 - 물론 이러한 파견을 모면하고자 인간적 수단을 강구하다가 결국 회개하여 -, 이방인들을 회개의 길로 이끈 요나는 예외적인 위대한 인물,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요나가 이 악한 세대에게 주어질 유일한 표징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이 세대가 이미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믿음이 없는 사람들, 곧 이방인들로 전락했다는 판단이 함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역사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굳건히 하기 위해 전사로 한 생을 살았던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은 지혜로 나라를 번성하게 한 인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부와 명예가 아니라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 곧 지혜를 청함으로써 지혜를 대표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1열왕 3,4-14). 다시 말해서, 솔로몬의 지혜는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베푸신 선물이기에, 이 선물을 잘 간직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이 전제되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요나의 표징과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지혜에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요나보다 더 큰 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있습니다. 이방인들, 곧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끈 요나보다도, 그리고 이 이방인들이 지혜를 얻으려고 땅끝에서 찾아온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가 바로 당신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십자가’가 소리 높이는 선언입니다! 성부의 뜻에 따라 세상 구원을 위해서 짊어지시고 죽음을 맞이하신 십자가는, 성부께 대한 전적인 믿음의 표지이며, 모든 이의 회개와, 유다인이건 그리스인이건, 곧 믿는 이건 믿지 않는 이건 이들을 하나로 묶는 표지,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나 하느님 보시기에는 지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십자성호를 그으며 신앙인으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회개하는 삶, 다시 말해서 선과 악을 분명히 식별할 줄 아는 슬기로운 삶을 다짐하며, 힘찬 발걸음을 이어나가는 구원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29-32: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징”(31절)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신비를 드러내는 예표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요나의 뱃속 체류와 그리스도의 무덤 체류를 연결하여 이렇게 해석한다.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음을 예표한다. 요나가 살아 나와서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이끌었듯, 그리스도의 부활은 온 세상에 회개와 구원을 가져왔다.”(Epistula 130 ad Probum, 18,35) 즉, 요나의 기적은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을 주는 구속의 신비를 드러낸다. 사순절은 바로 이 신비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예수님은 니네베 사람들과 스바 여왕을 들어 이스라엘을 꾸짖으신다. 선택받은 백성이면서도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오히려 외부의 이방인들이 그들을 단죄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주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니네베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설교로 회개하였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수많은 기적과 표징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이방인들은 단 한 줄기의 빛을 보고도 하느님께 나아갔다. 그러나 선택받은 백성은 태양 같은 빛을 받고도 눈을 감았다.”(Homiliae in Matthaeum, Hom. 43,3)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본문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왔다.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권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기적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기적보다 더 큰 것을 보여주신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통한 내적 변화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기적은 외적인 눈을 놀라게 하지만, 회개는 영혼을 구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표징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이다.”(Sermo II, 40) 사순절은 기적을 찾는 계절이 아니라, 회개의 기적을 체험하는 때dl다. 나의 교만한 마음이 낮아지고, 이웃을 향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적dl다. 

 

예수님 시대의 군중이 기적만을 원했듯, 오늘날 우리도 신앙을 감각적인 체험이나 눈에 보이는 기적에 의존하려는 유혹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에게 성사와 말씀 안에 주어진 ‘요나의 표징’, 곧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바라보라고 권고한다(교리서 540항). 사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부르심을 받는다. 말씀 안에서 지혜를 찾는 스바 여왕의 겸손을 본받을 것; 회개와 단식으로 하느님께 돌아선 니네베 사람들의 결단을 닮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회개와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외적 기적을 요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파스카라는 유일한 표징을 붙들라는 초대이다. 그 표징 안에서 우리는 죄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화되는 참된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병우 신부님_<사순 제1주간 수요일>(2.25)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11,29ㄷ)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리자!' 

오늘 복음(루카11,29-32)은 '요나의 표징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께로 모여드는 군중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루카11,29-30) 

 

요나는 타락한 니네베 사람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표징입니다. 요나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로 그 성읍에 외쳐라."(요나3,2)는 주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내리자, 일어나 니네베로 가서 이렇게 외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3,4ㄷ) 

 

그러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니네베 사람 모두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요나3,5-6) 

 

니네베 사람들의 이 움직임, 곧 회개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요나3,10) 

 

참으로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내 마음이 움직이면, 하느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내 마음이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이신 예수님에게로(십자가로) 향해 있으면, 하느님께서 마음을 움직이셔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날마다, 아니 매순간 우리 안에서 일어나기를 바라시는 기적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이제와 영원히 살게하는 표징입니다.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해서 구원받기만을 바라십니다.>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29-32)”

 

 

 

1) 여기서 ‘요나의 표징’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뜻하기도 하고,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나의 죽음과 부활 외에는

 

다른 표징은 없다.”, 즉 “나의 죽음과 부활을 보게 되면,

 

너희는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회개부터 하여라.”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들의 증언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들이 선교활동을 할 때, “예수님이 메시아” 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표징을 사도들에게 요구한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때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곧

 

‘예수님이 메시아’ 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징이다.” 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사도 2,32.36-38.40-41).”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표징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안 믿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은, 사도들의 증언과

 

선포를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수가 ‘삼천 명가량’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안 믿고 그냥 가버린 사람들의 수는

 

그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2) 요나서를 보면, 요나 예언자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을 니네베 사람들이

 

알고 있었는지 여부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선원들을 통해서 요나를 바다에 내던진 일에 관한

 

소문이 니네베에 퍼졌을 가능성이 있고, 요나가 멸망을

 

선포할 때 사람들이 그 소문 덕분에 좀 더 쉽게 그 선포를

 

믿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떻든 중요한 점은, 니네베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외국인 예언자의 선포를 듣고서 회개했다는 점입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 옷을 입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요나 3,4-5.10).”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중에 취소하게 될

 

일이나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요나를 타이르면서 하신 말씀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니네베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셨습니다(요나 4,11).

 

따라서 ‘니네베 멸망 선포’에는 “회개하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을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라는 선포는,

 

당연히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라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함으로써 구원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신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멸망 선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그 일이 바로 ‘요나의 표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나서에 있는 ‘하느님께서 마음을 돌리셨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자비’를 ‘인간적으로’ 표현할 것일 뿐입니다.>

 

 

 

3)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믿고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라는

 

선포이고, 동시에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라는 선포입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고 싶으면 믿고 회개하면 됩니다.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결과도, 나 자신이 선택합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심판결과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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