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5일 (목)
(자)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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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3/4) : 사순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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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3-04 ㅣ No.188291

 

* 독서 : 예레 18, 18-20

* 복음 : 마태 20, 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예고’와 ‘섬김과 출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섬김과 출세’에 대한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그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있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하였을(마태 20,22 참조) 뿐만 아니라, ‘진정 청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건만, 정작 제자들의 마음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그 어머니를 불쾌하게 여기는 다른 제자들을 불러 당부하십니다.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27)

이는 높은 사람, 으뜸인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진정한 높은 사람’인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동시에, ‘높은 사람이 되는 진정한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곧 ‘높은 사람’이란 ‘남을 섬기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종’이 되는 데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싶으면 ‘먼저’ 다른 사람을 성인으로 떠받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신뢰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요,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섬김 받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섬기셨고, 당신을 배신하고 도망쳐 버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섬기셨기에, 섬김 받으시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단지 작고 낮은 자라고 해서 섬기는 자인 것은 아니요, 희생과 헌신으로 봉사한다고 해서 섬기는 자인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섬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이고 떠받들며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낮춘다하더라도,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존경이 없다면, ‘진정한 섬김’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섬김’은 내가 낮은 자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높은 자 되게 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높이기 위해서’, 곧 ‘우리를 하느님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섬기셨듯이 말입니다.

묘하게도, 섬기는 사람은 섬기는 그 사람을 닮아갑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섬기면 예수님이 되어가고, 진리를 섬기면 진리가 되어 갈 것입니다. 돈을 섬기면 탐욕스런 사람이 되어가고, 세상을 섬기면 세속적인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반면에 주님을 섬기면 주님을 닮아 갈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주님을 섬기는 학원”(<베네딕도 규칙서> 머리말 45)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형제 섬기기’를 통하여, ‘주님 섬기기’를 배워야 할 일입니다. 아멘.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마태 20,23)

주님!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제 몸에

당신 생명이 담겨 있음을 잊지 말게 하소서.

언제나 당신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당신과 함께 죽음으로써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오늘도 제 몸이 으깨지고 부서져

당신의 생명을 피워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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