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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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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하곤 합니다. 음악프로그램도 있고,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도 있고, 문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번역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다운받는 과정에서 광고성 프로그램이 설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어디에 설치되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삭제하기도 어렵습니다. 인공지능에 물어보니 자세히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순서대로 따라 하니 광고 프로그램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광고 프로그램을 제거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밀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하지 않았는데도 가라지가 생겨나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가라지를 뽑는 것이 광고성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만큼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 때까지 기다렸다가 밀은 곡식 창고에 모으고, 가라지는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컴퓨터의 광고성 프로그램은 찾아서 삭제하면 되지만 우리 마음에 심어진 악한 생각과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는 시리아 장군 나아만의 이야기입니다. 나아만은 싸움에 능한 장군이었지만 그의 몸에는 나병이 생겼습니다. 시리아에서는 그의 나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온 몸종이 이스라엘에는 나병을 고칠 수 있는 예언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언자 엘리사는 나병을 없애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요르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갔다가 나오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에는 이스라엘의 요르단강보다 훨씬 크고 깨끗한 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병을 없애는 것은 강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병을 없애는 것은 강의 깨끗함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병을 없앨 수 있다는 엘리사 예언자에 대한 믿음이 중요했습니다.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을 믿었고, 요르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갔습니다. 그리고 나병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광고성 프로그램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시리아 장군이 걸렸던 나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어진 ‘시기와 질투’를 이야기합니다. 시기와 질투를 없애는 것은 광고성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시리아 장군의 걸렸던 나병을 치유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눈에 보이는 광고성 프로그램과 눈에 보이는 나병은 알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거하거나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기와 질투’는 알기 어렵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거하는 것도, 치유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덕목들이 있습니다. 복음삼덕으로는 정결, 청빈, 순명이 있습니다. 향주삼덕으로는 믿음, 희망, 사랑이 있습니다. 깊은 지하에 있는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이 있어야 합니다. 펌프에 마중물을 넣고 손잡이를 움직이면 마중물은 지하의 물을 불러오게 됩니다. 복음삼덕과 향주삼덕이 내 삶을 통해서 드러나기 위해서, 필요한 ‘마중물’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갈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혈하던 여인은 병을 고치고 싶은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갈망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죄인으로 비난받던 자캐오는 새롭게 살고 싶은 갈망이 있었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빚진 것이 있다면 4배로 갚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갈망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 받았습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들은 계명을 잘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율법과 계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더 높은 영적인 갈망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교만과 자만 때문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표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정한 하느님의 법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하는 교만과 자만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21세기의 교회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교회의 유산을 많이 물려받은 유럽교회와 재정적으로 넉넉한 북미교회의 사정이 그렇게 밝은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가 부족해서 성당을 폐쇄하기도 합니다. 성소자가 줄어서 사제들의 고령화가 심각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여유도, 교회의 유산도 ‘갈망’이 없으면 영적인 메마름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희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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