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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_조욱현 신부_이병우 신부_송영진 신부_3월 8일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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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참 생명의 샘 [말씀] ■ 제1독서(탈출 17,3-7)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에서 히브리 백성들은 그 땅에 도착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으나, 목마름으로 고통을 받자, 하느님을 의심하여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지시를 받은 모세는 뜻밖의 샘물을 찾아 백성들의 목을 축여 줍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훗날, 백성 한가운데 계시며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가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결핍을 상징하는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습니다. ‘마싸와 므리바’라는 지명이 이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 제2독서(로마 5,1-2.5-8) 이 본문에서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선물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새로운 삶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성령의 선물을 가득히 받은 신앙인은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는 은총의 세계를 발견하며 희망 속에 살아갑니다. 이 대목 다음에 세례에 대하여 말할 때도 같은 논거를 취하는 것을 보면, 사도 바오로는 물과 성령 사이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하는 듯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복음서는 물론 성경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성령은 생명의 참된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 복음(요한 4,5-42) 우물가에서 펼쳐진 간단한 대화를 통하여 복음저자 요한은 사마리아 여인이 신앙으로 다가서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고향 사람들에게조차 멸시를 받던 이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우선 놀라운 몸짓을 보이십니다. 이어서 그녀의 삶을 반성하도록 이끌면서 참 생명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시며, 그녀는 주님 안에 참 생명의 샘이 있음을 고백하며 청합니다. 이로써 주님은 당신의 사명, 이방 민족이라 할지라도 구원을 청하는 자에게 베풀어야 하는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거기에 하느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김] 물은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값진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이 흔한 나라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물 보호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은 늘 풍부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체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생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종종 생명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주 등장하며 성경의 세계에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건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속에서 상징적인 요소들이 무수히 등장하며 그 가운데서도 물이 으뜸입니다. 물은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표지입니다. 시리아 사령관 나아만이 나병으로부터 치유를 받았던 곳은 요르단강이었으며, 태생 소경이 빛을 되찾았던 곳은 실로암 연못이었습니다. 나아가 주님은 당신 자신을 물, 생명의 물로 표현하십니다. 성부께서 성자 안에 당신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이 물은 썩을 수 없으며 고갈될 수 없는 물, 십자가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에서 신앙인들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이 물에 잠긴 사람들이며, 미사성제 안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하시는 예수님을 믿어 고백할 때마다 생명의 물을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사순시기 동안, 특별히 이번 한 주간, 주일 미사는 물론 평일 미사에도 자주 참여하여 생명의 물을 흠뻑 마심으로써 생기 있고 활기찬 모습으로 주님을 따르는 한편, 쉬고 있는 주위의 형제들도 생명의 물에 다시 다가설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인도하는, 보람 있는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1. 광야의 목마름과 인간의 구원 갈망 사순 시기 제3주일의 중심 주제는 “목마름과 생명”이다. 탈출기(17,3-7)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메마름 속에서 하느님께 불평한다. 그들의 목마름은 단순한 신체적 갈증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의 부재에 대한 영적 갈망이었다. 바위에서 솟은 물은 단순한 자연적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백성과 계약을 새롭게 하시는 표징이었다. 교리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바위에서 솟은 물은 성령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바위이시다.”(694항 참조; 1코린 10,4) 즉, 사순 시기의 ‘목마름’은 죄의 사막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원천으로 나아가라는 초대이다.
2. 예수님의 갈증: 인간을 찾으시는 하느님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 하시며 여인에게 먼저 청하신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목말라 하신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 “주님은 마셨으나, 물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을 원하셨다. 그분은 물을 청하셨지만, 그녀에게 성령의 샘을 주고자 하셨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XV,11.30) 하느님은 인간에게 필요하신 분이 아니라, 인간을 갈망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청은 단순한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의 자리로 불러 올리시는 사랑의 움직임이다.
3.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이해를 점차 끌어올리신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14절) 이 물은 곧 성령을 가리킨다. 요한 복음은 나중에 명확히 밝힌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9) 교리서는 성령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령은 하느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채우시는 ‘내적 샘’이다. 성령의 은총은 믿는 이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된다.”(2652항)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의 말처럼,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채워질수록 더 커진다. 샘물은 마실수록 더욱 마시고 싶게 한다.”(Vita Moysis II,239)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끝없는 생명과의 친교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4. 영과 진리 안의 예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성전 예수님은 여인에게 예배의 본질을 새롭게 가르치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24절)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리짐 산의 대립을 넘어, 그리스도 자신이 새로운 성전임을 선포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이렇게 풀이한다. “이제 더 이상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전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을 통해 참된 예배를 드린다.”(Homilia in Ioannem XXXIII,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론적 전환이다.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는 성전의 벽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 안이다. 그분이 “진리”이시며(요한 14,6), 그분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살아 있는 예배자로 변화시키신다.
5. 선교의 샘: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갔다.”(28절)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즉시 물동이를 버리고 달려 나간다. 그녀의 변화는 복음을 체험한 자의 본질적 응답, 선교적 삶을 보여 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물동이를 버렸다는 것은 세속의 욕망을 버렸음을 뜻한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내적 샘에서 솟는 물을 마셨다.”(Homilia in Ioannem XV,30) 그녀는 과거의 부끄러움 속에서 새 생명을 얻었고, 그 생명은 즉시 복음의 증언으로 흘러넘친다. 이것이 사순절의 목표이다. 단순한 회개를 넘어, 하느님을 만남으로 변화된 인간이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6.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34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분의 사명은 곧 구원의 선포이며, 그분은 우리를 그 사명에 참여시키신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명을 함께 완수한다.”(2825항) 따라서 복음 선포는 신앙인의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내적 샘물이어야 한다.
7. 결론: 그리스도, 우리의 샘이시며 성전이시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신앙 여정의 모형이다. 우리의 삶 속에도 여전히 광야의 갈증, 관계의 메마름, 진리의 목마름이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은 바로 목마르신 예수님, 인간을 갈망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을 만나면, 우리는 더 이상 외적인 샘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분은 우리 안에 “솟는 샘”(14절)을 두시며, 그 샘은 성령의 은총 안에서 끊임없이 새 생명을 흐르게 한다. 이제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의 갈증 속으로 나아가,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42절)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선교자로 살아가야 한다.
이병우 신부님_제목 <사순 제3주일>(3.8 <사순 제3주일>(3.8)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요한4,15) '생명의 샘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요한4,5-42)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가실 때 '야곱의 우물'에서 일어난 일을 전합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으러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다오?"(요한4,7)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물을 청하십니까?"(요한4,9)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4,10)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4,13-14) 사마리아 여자가 말합니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요한4,15) 그리고 이어서 어떤 장소가 아닌,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예배 드리는 진실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함께 마음을 모아 봅시다! 외적인 형식이나 의무에 따른 미사가 아닌 영과 진리 안에서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미사가 되게 합시다! 모두의 구원을 위해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너의 구원을 위해 노력합시다! 참된 양식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물이신 예수님께로 더 나아갑시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4,34) 생명의 샘이신 예수님과 함께 복된 주일 보내세요♡ 이병우 루카 신부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물’이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요한 4,13-19)”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4,25-26)”
1)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생명의 물’이신 분”이라는 ‘계시’(가르침)이고, 그래서 요한복음 7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그리고 묵시록 21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도 연결됩니다. “다 이루어졌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것들을 받을 것이며,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묵시 21,6-7).” 그런데 이 말씀들은,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과 사실상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배고프지 않음’과 ‘목마르지 않음’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과 기쁨과 평화를 뜻합니다. 반대로, ‘배고픔’과 ‘목마름’은, 아직 구원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시련 등을, 또는 고통스러운 인생살이 등을 뜻합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입니다. 육신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걱정할 일이 없는 부자라고 해도 영혼의 배고픔과 영적인 목마름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영혼의 배고픔과 갈증’에서 우리를 완전히, 또 영원히 해방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7).”
2) 사마리아 여인은 ‘인생의 갈증’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는, 즉 구원받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남편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도 상징적인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물론 그 여인의 실제 사생활을 나타낸 말씀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뜻은 같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는, “너의 종교가 무엇이냐?”로 해석되고,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는,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로 해석됩니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은, “너는 여러 종교를 전전했지만”으로 해석되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는, “지금 네가 속해 있는 종교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니”로 해석됩니다. 그 여인은 참된 구원의 길을 알려 주는 종교를 찾아서 여러 종교를 전전하지만 ‘참 종교’를 만나지 못한 채로 계속 구원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을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유대교를 겉으로만 흉내 낸 것이었고, 올바른 신앙이 아닌, ‘형식적인 신앙’이었습니다. 22절에 있는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이라는 말씀은 그것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인생의 갈증’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면서 여러 종교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있고, 종교가 아닌 어떤 학문이나 사상 등을 찾아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3) 우리는(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로 등록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성사는 신앙생활의 시작일 뿐입니다. 신앙의 완성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그 사람들이 그것에 다시 말려들어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들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 의로움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하였던 편이 나을 것입니다(2베드 2,20-21).” 신앙생활은, 갈증을 해결해 준다고 끈질기게 속이는 ‘가짜 생명수들‘의 유혹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는 생활입니다. 사순 시기는 그런 ‘가짜 생명수들’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한 ‘저항력’을 키우는 시기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사순 제3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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