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8일 (일)
(자) 사순 제3주일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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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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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09:58 ㅣ No.188378

[사순 제3주일 가해] 요한 4,5-42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과 물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물 없이는 채 이틀도 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이 영적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 말씀이 꼭 필요하지요. 둘째, 이곳에서 저곳으로 흘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야만 썩지 않습니다. 또한 흐르며 지나간 자리에 생명이 움트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말씀은 내 마음에서 손과 발로, 행동과 실천을 통해 나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야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지요. 셋째, 다른 것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입니다. 오물이 묻어 더러워진 부분을 물로 씻어내면 깨끗해집니다. 마찬가지로 탐욕과 집착, 죄와 허물로 더러워진 우리 마음을 주님 말씀으로 성찰하고 회개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어 우리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육신이 갈증을 느끼면 물을 마셔야 하듯, 영혼이 참된 행복에 대한 갈망을 느끼면 주님 말씀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마음을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주시는 하느님 말씀의 신비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해가 중천에 떠서 따갑게 내리쬐던 정오 무렵,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우물가를 찾습니다. 근동 지방에서 한낮의 더위는 말 그대로 ‘살인적’입니다. 따가운 직사광선은 화상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올라가는 고온은 탈수증세를 일으키지요. 그래서 그곳 아낙네들은 더위가 한풀 꺾이는 해질녘에 물을 긷기 위해 우물가로 모여들었는데, 이 우물가에서 이루어지는 잡담과 뒷담화에서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그런 자리가 너무나 불편했기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무더운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던 겁니다. 그건 그녀의 복잡한 ‘사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기를 다섯 차례나 반복했고, 지금은 여섯번째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 외로움과 공허함을 남자와의 관계 안에서 채워보려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늘 자기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줄 무언가에 목말라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시어 마실 물을 청하십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기 위해 청하신 게 아닙니다. 그녀로하여금 자신이 정확히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그 목마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녀를 당신과 나누는 영적 대화에 초대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손에 들린 두레박 속의 물을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이 말씀에서 ‘물’은 ‘세상의 물’, 즉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즐거움들을 상징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 명예 같은 세속적 조건들이나 육체적 쾌락을 통해 영적 갈망을 채워보려고 하지만, 그것들을 아무리 들이켜도 마음 속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것들을 찾게 되지요.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 영혼은 심각한 ‘탈수증세’에 빠지고 맙니다. 심한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탄산음료를 마시면 몸 속 수분이 빠져나가 더 심한 갈증으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의 물’로 영적 갈망을 채우려고 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당신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 즉 하느님 말씀을 우리 마음 안에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환자의 건강상태는 그를 꾸준히 진찰하고 치료한 주치의가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내 영혼의 상태는 새 삶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스스로의 의지와 사랑으로 당신을 받아들이고 일치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해지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고질적인 가뭄 문제로 고통받는 마을 주민들에게 식수를 지원해주면 일시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이 다 떨어지고 나면 또 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요. 그렇기에 그 마을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그 마을에 큰 저수지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러면 가뭄 문제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갈증이라는 문제도 그렇게 대처하라고 하십니다.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채워서 영적 갈망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려고 들지 말고, ‘영원히 물이 솟는 샘’인 하느님 말씀을 내 마음 깊이 받아들여서 영적 갈망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라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닮아 일치를 이루어야만 완전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을 내 안에 모시고, 그 말씀대로 실천함으로써 그분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 속 공허함은 어느 새 사라지고, 충만한 기쁨이 가득 차오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당신이 그녀의 마음 속 갈망을 참된 기쁨과 행복으로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세상의 물’을 찾아 헤매지 말고, 당신 말씀을 듣고 따름으로써 그 안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물’을 마시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그 말씀대로 예수님을 자기 안에 받아들입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은 이제 ‘낯선 유다인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완전한 행복과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주는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앞서 만났던 여섯 명의 남자들에게서는 절대 채우지 못했던 공허함을 일곱번째로 만난 예수님을 통해 비로소 완전히 해소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녀는 물동이를 우물가에 버려둔 채 고을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그분을 통해 얻은 구원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을 만나 삶의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누린 이들은 그것을 자기 혼자만 누리지 않지요. 그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함으로써 그들도 자신과 같은 기쁨을 누리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도 그래야겠습니다. 주님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이며 따름으로써, 행동과 삶으로 널리 선포함으로써 모두의 마음을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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