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수)
(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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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사랑하면 곰보도 곰보로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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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05:56 ㅣ No.188430

 

오늘 글을 많이 올려 죄송합니다. 좋은 내용이라 공유를 하고 싶습니다. 어젠 15년 만에 친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호주로 이민 간 친구입니다. 호주로 이민을 간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연상의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몇 살 많은 정도가 아닙니다. 띠동갑에다가 다섯살 더 많습니다. 그럼 계산이 나올 겁니다. 열일곱살 연상입니다. 이 친구는 정상적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친구 어머니는 일찍 결혼해 친구를 20세에 출산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따져보면 며느리되는 사람과 세살차이나는 것이죠. 친구 어머니 연세로 보면 거의 엄마뻘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거라 반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연상과도 많이 결혼을 하는 추세이지만 그당시에는 아무리 양보를 해 좋게 생각해도 열일곱은 정말 많은 차이이고 보통 기준으로 보면 정상적인 결혼이라는 인식을 할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였습니다. 사랑엔 나이와 국경도 초월한다고는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당사자가 되면 그것도 쉽게 잘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결국은 정상적인 결혼을 하지 못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부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한국에서는 사는 게 힘들어 이민을 간 것입니다. 친구는 호주로 가면 호주에서 대접을 잘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있습니다. 프로그래머입니다. 친구는 지금 55세이고 부인은 72세입니다. 한국을 잠시 나왔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입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있습니다. 아들과 딸은 호주에서 영주권이 있어 호주에서 평생 살 거라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오고 싶은 이유는 아내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와 아내는 하숙집에서 하숙생과 하숙집 주인으로 인연이 돼 어떻게 사랑이 꽃핀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 이미 아내는 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 가 딸과 살면서 하숙집을 운영했던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 친구의 결혼 사실을 제일 먼저 저한테 이야기하고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친구한테 이상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게 아니냐고만 했습니다. 저는 그때 친구 엄마가 아주 젊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친구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한테 엄마가 보시면 기가 막힐 것 같다는 말만 했습니다. 친구도 인정했습니다. 

 

나이도 많거니와 또 이건 이유야 어찌됐든 친구는 총각이고 부인될 사람은 애 딸린 여자분이었기 때문에 이건 엄마 입장에서 기가 막힐 정도가 아닌 것이었죠. 엄마는 명문대까지 나왔기 때문에 며느리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환상이 무너진 것입니다. 친척들 보기에도 그렇고 해서 결혼을 반대한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궁금한 게 있지만 친구의 감정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묻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이상한 사고를 가진 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능력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친구가 그런 사람을 결혼 상대로 생각을 했으면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한 번 같이 결혼할 분과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길래 친구보다도 열일곱 많은 사람과 그것도 한 번 결혼했던 여자분과 하려고 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번 만나고 그 이후에도 몇 번 같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나이만 아니면 어쩌면 친구가 반할 만한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숙집 주인 같은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기업의 대표이사 같은 중후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친구가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 친구가 결혼할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게 아니었습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였던 분이 호감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이땐 이성의 감정으로 좋아했던 건 아니였습니다. 애가 나이는 어리지만 주인이 봤을 땐 어린 애처럼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듬직한 모습을 본 것입니다. 처음엔 그런 감정이었는 그게 그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감정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나이는 어린데 하는 행동이 나이 어린 것처럼 보인 게 아니라 그만 나이를 잊을 정도로 듬직하니 이성의 감정이 싹튼 것입니다. 

 

원래 하숙집을 하면서 딸 있는 거 잘 키워 시집보내는 걸 인생의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하고 재혼 같은 건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운명의 여신은 그걸 허락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혼자서 속앓이만 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한테도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마음을 일기로 어떤 글로 남겼는데 이걸 우연히 딸이 보게 됐습니다. 딸이 그런 글을 보고 난 후에 나이는 어리지만 애가 철이 들었는지 엄마이기 이전에 하나의 여자로서 이해를 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자기는 결혼을 해 가정을 가지게 되면 그땐 엄마는 혼자 남게 될 것을 생각했던 것이죠. 결국은 이 딸이 일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친구에게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처음엔 애가 장난치는 줄 알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 애가 이야기한 걸 아주머니께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친구는 그냥 애가 그런 장난을 쳤다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한 이야기였는데 웃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아주머니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아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딸래미가 그런 글을 보게 될 줄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을 친구가 이야기했을 때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거겠죠. 누구나 그런 상황이면 그럴 겁니다. 이때 친구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던 것입니다. 그냥 웃고 지나갈 그런 일인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 반응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는 당황이라기보다는 황당하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전혀 그런 걸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친구도 조금은 당황스럽고 황당했지만 그때부터 하숙집 아주머니를 하숙집 주인으로 보이지 않고 마치 이성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 정도까지밖에 친구의 결혼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운명의 여신이 이렇게 친구와 그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랑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해 준 것이었습니다. 제가 제목에는 곰보라고 했지만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호주로 이민 갈 때 보고 어제 처음 만난 것입니다. 어제 다시 보니 예전에 처음 살림을 할 때 그때 본 모습과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보다는 지금은 친구랑 친구 아내가 더 나이 차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보면 이젠 마치 엄마와 아들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그땐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친구 아내는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다른 친척집에 가고 친구랑 더 많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친구이다 보니 친구 사이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구로서 물어봤습니다. 솔직히 후회해 본 적 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친구의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바로 사랑하면 곰보도 곰보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 하나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어제 친구와 만나서 반가웠지만 친구의 이런 인생을 보고서 생각한 게 있었습니다. 친구가 남긴 마지막 말을 보고 말입니다. 친구는 이성적인 사랑인 에로스 같은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저는 신앙 측면에서 아가페 사랑을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이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도 친구가 친구 아내랑 나누는 사랑처럼 그렇게 되게 되면 친구가 말했듯이 사랑하면 곰보도 곰보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이렇게 바꿔도 성립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의 옆 형제자매도 신앙 안에서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가 형제자매를 이 친구가 하는 사랑처럼 신앙적으로 아가페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랑이 진정할 때는 그 상대가 미울 수도 없고 또 그 상대 속에 있는 죄도 보이지 않을 거란 묵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랑을 하면 곰보가 곰보로 보이지 않듯이 우리도 신앙 안에서 신앙으로 형제를 사랑하면 형제의 허물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형제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그만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 친구를 만나면서 또 다시 사랑이라는 게 뭔지 저한테 중요한 교훈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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