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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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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는 참으로 많은 봉사자들이 계십니다. 전례 분과 안에서도 헌화회, 제대회, 독서단, 해설단, 복사단, 성가대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손길과 기도가 있기에 미사 전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의 고백이 됩니다. 이분들이 뿌리가 되어 전례라는 꽃이 피어납니다. 또 본당에는 신앙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신심 단체들이 있습니다. 성서 공부반, CLC, ME, 꾸르실료는 각기 다른 영성과 길을 따라가지만, 모두 말씀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본당 사목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 있습니다. 바로 레지오 마리애입니다. 구역장과 반장이 본당을 조직적으로 이끈다면, 레지오 단원들은 기도와 방문과 봉사로 본당의 숨결을 이어 줍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일정한 기간을 거쳐 ‘선서’를 합니다. 저는 선서가 있는 프레시디움의 주해에는 가능하면 꼭 참석하여 축하해 드리고, 강복을 드립니다. 그 선서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앙 인생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최근 논의가 되는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문구 수정에 관한 한 사제의 기고문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그 글은 교도권의 사목적 의도를 존중하면서도, 레지오의 영성과 대중 신심이 지닌 생명력을 지켜야 한다는 진지한 문제 제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성모님을 통하지 않고서는’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레지오 영성의 첫 번째 초석이라는 지적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신학은 신앙을 정리하고 보호하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말하면서 문법이 생겼듯이, 신심의 삶이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신학이 생겼습니다. 양파 껍질을 모두 벗기면 남는 것이 없듯이, 살아 있는 신앙의 체험을 지나치게 분석하고 정제하다 보면 오히려 본질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신심과 신학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관계여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사제로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혹시 교우들의 기도와 신심을 ‘설명해야 할 대상’이나 ‘조정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사목의 이름으로, 신학의 정확성을 이유로, 누군가의 간절한 신앙 고백에 쉽게 제동을 걸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신심이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곧바로 교정하려 하기보다 먼저 그 안에 담긴 갈망과 사랑을 경청했는지 묻게 됩니다. 사제는 신앙의 주인이 아니라 봉사자입니다. 신앙의 생명력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생명이 자라도록 길을 내주는 사람입니다. 사제 자신부터 신학이라는 언어 뒤에 숨지 않고, 신심이라는 현장에서 다시 무릎 꿇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순시기에 더욱 절실히 느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십니다. 그 말씀에는 분명한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분의 겉모습을 안다는 것이 곧 그분을 다 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느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쥐고 있던 해석의 권위, 판단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기와 질투는 폭력이 되었고,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더 높은 자리를 요구하자 다른 제자들은 불평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늘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떡고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며 저는 괴로웠지만 동시에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내려놓으라고 하신 분, 이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신 분,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분입니다. 사랑하면 진리를 알 수 있고, 사랑하면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하신 분입니다. 진리는 반드시 자연이나 신화, 이성이라는 옷을 입어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사랑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 그분의 말씀과 표징,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그분 자신이 바로 진리입니다. 신심과 신학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신앙은 메마르지 않습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신앙이 아니라, 가슴으로 살고 몸으로 실천하는 신앙이 됩니다. 사순시기, 우리 각자의 신앙이 다시 그 조화를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의 신앙이 차가운 판단에 갇히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시작된 신심과 지혜로 다듬어진 신학이 교회 안에서 하나로 숨 쉬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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