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수)
(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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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 송영진 신부_3월 11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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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24 ㅣ No.188437

김건태 신부_율법의 완성

 

오늘 복음 말씀은마태오 복음의 그 유명한 산상 설교에서(5-7), 예수님이 참 행복의 길을 제시하신 다음율법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설파하기에 앞서 하나의 머리말처럼 던지신 말씀입니다여기서 예수님은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완성하러 오신 분임을 천명하십니다. ‘완성은 사전적으로 완전히 이룸을 의미합니다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완전하게 이루신다는 말씀인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내용이 아직 부족하니 더 보완하여 완성하신다는 말씀일까?

 

우선예수님이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하고 말씀을 던지실 때는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정확하게 말해서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전제됩니다예수님의 적대자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그 가운데서도 바리사이들특히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벌일 때바탕에는 늘 이와 같은 판단 또는 불신이 깔려 있었습니다율법을 성실히 준수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고 섬기는 길이라 확신하고 있었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경시할 뿐만 아니라 자주 어기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따라서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법 죄인과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구약시대의 율법만이 아니라 예수님 시대 유다교의 율법을 완성의 길로 하나씩 하나씩 이끌어 가십니다(마태 5,21-7,27). 살인해서는 안 된다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간음해서는 안 된다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등 십계명에 명시된 규범들을 시작으로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이어 신앙의 기본 의식과 행위에 관한 사항들을 재론하시면서 완성의 단계로 올려놓으십니다군중은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신 완성은 무엇인가를 덧붙이고 색칠해서 이루어내는 완성이 아니라율법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는 차원의 완성을 말합니다하느님의 가르침(=토라)을 집대성해 율법서가 엮어졌다면율법 글자 하나하나에는 이미 하느님의 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하느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실 때는 그 대상을우선은 이스라엘 백성을나아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사랑이 없으셨다면 말씀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성부의 뜻을 따라 사랑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십자가상 죽음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신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만이 율법을 완성으로 이끌어가실 수 있는 분임을 우리 신앙인들은 고백합니다그리고 그 사랑에 화답하는 삶그것이 바로 신앙 또는 신앙생활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준수해야 할 규정과 법규들을 하느님 사랑과 구원 의지의 구체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는 가운데이번 사순시기가 우리 모두에게 은혜로운 때구원의 시기로 머물 수 있도록 기도하며만나는 사람들을 사랑과 이해로 챙기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_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쳐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17)라고 말씀하신다주님은 단순히 새로운 규정을 더하거나 옛 계명을 무시하려는 분이 아니라율법과 예언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고 완성하신 분이시다율법의 본질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사랑과 순종이다따라서 율법은 문자 그대로의 규정 준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계명으로 충만해진다바오로 사도도 말한다“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폐지하지 않으시고오히려 그것을 당신 안에서 요약하고 완성하셨다.(Adversus Haereses IV, 9,1)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율법의 영적 의미를 강조하며 이렇게 설명한다“주님은 ‘율법만이 아니라 예언서까지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시며당신께서 옛것을 거스르는 분이 아니라그것을 완성하는 분임을 보여 주신다.(Homilia XVI in Matthaeum)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를 “율법의 열매”라고 부른다“율법은 은총을 찾게 하려고 주어졌고은총은 율법을 완성하려고 주어졌다.(De Spiritu et Littera, 19) 이처럼 교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단순히 옛 규정을 보존하는 차원이 아니라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목적과 충만을 얻는 사건으로 이해했다.

 

교리서는 “복음의 법은 옛 법을 완성하고 정화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한다.(1967)라고 한다또한예수님의 산상설교에 대해 “예수님은 십계명의 요구를 기억하게 하시며자기 자신에게서 계명의 충만한 의미를 드러내신다.(2053)라고 가르친다따라서 율법의 완성은 단순히 행위의 차원이 아니라마음의 변화와 사랑의 충만에 달려있다.

 

사순 시기를 걷고 있는 우리에게오늘 복음은 큰 물음을 던진다나는 계명을 단순히 “금지 조항”이나 “의무”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아니면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아내는 길로 받아들이고 있는가예수께서는 가장 작은 계명조차도 무시하지 말라고 하신다작은 것 하나를 가볍게 여길 때우리는 결국 큰 사랑에도 불충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신앙생활의 작은 충실함작은 희생작은 사랑의 실천이 곧 하늘나라의 큰 보화로 이어진다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선 분이 아니라율법을 충만하게 하신 분이시다그분의 삶과 죽음그리고 부활을 통해 계명의 깊은 의미는 곧 사랑임이 드러났다사순 시기를 지내며 우리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더 나아가 그것을 이웃에게 전하며 함께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작은 계명 하나하나에 충실할 때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부활의 새로운 생명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사순 제3주간 수요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3.11)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5,17)


'형식이 아닌 본질에 충실하자!'


오늘 복음(마태5,17-19)은 '예수님과 율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5,17-18)


그리고 이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먼저 계명들을 잘 지키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으로 불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본질에 충실하자!'


참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쁨이고, 이 바쁨이 어디를 향해 있는 바쁨인지에 대한 가끔씩의 되돌아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끝까지 대립각을 세웠던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율법 그 자체, 율법의 형식이라는 것에 집착을 했고, 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본질인 사랑(가엾은 마음)을 향해 있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율법의 본질이시며 이를 향해 있었던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바쁨이 형식에 얽매이는 바쁨이 되지 말고, 본질에 충실한 바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사를 했네 안했네도 중요하지만, 기도를 했네 안했네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사와 기도의 본질인 사랑(Agape)'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사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너무 형식을 따라가지 말고, 작은 본질들 안에 머물러 있도록 합시다! 그래서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됩시다!

송영진 신부_<신앙생활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7-19).”

1) 이 말씀에서 ‘율법의 완성’은 ‘율법 실천의 완성’이고,

이 말은 ‘신앙생활의 완성’을 뜻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완성시켜 주기 위한 가르침들인데,

특히 ‘산상설교’의 가르침들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사람들의 부족한 점’, 또는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점’ 가운데 첫 번째는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위선’을 자주, 그리고 엄하게

꾸짖으신 것은,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믿음’이 부족하거나 없는 것입니다.

믿으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표징만 요구하는 모습이

‘믿음의 부족함’을 잘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세 번째는 ‘사랑’이 부족하거나 ‘사랑 실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소원을 비는 것은 잘하면서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네 번째는 ‘희망’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만 원하고, 욕심내고, 집착하면서

‘영원한 것’을 얻기를 바라는 희망은 없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로 섞여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것도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그렇게

잘못된 것들을 고쳐서 바로잡고, 올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가르침들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에 있는 ‘율법, 예언서, 계명’은

그것들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이 믿고, 회개해서, 구원을 받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당시 사람들의 오해와 의심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계명과 정결 예식 등을

안 지킨다고 오해했고,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율법들을 폐지하려 한다고 의심했고, 그러면서 유대교를

완전히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마태 12,14).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종말의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인데,

뜻으로는 ‘영원히’입니다.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하느님의 뜻은 변함이 없다.”입니다.

표현만 보면,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면 율법이 없어지는

것 같은데,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입니다.

묵시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3)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는, “계명들 가운데에서 하나라도 자기 마음대로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안 지키고”입니다.

하느님의 계명들은 전부 다 똑같이 중요합니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계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과

안 지켜도 괜찮은 계명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전부 다 똑같이 지켜야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뜻이고,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가 특별히 언급되어

있는 것은,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잘못 가르쳐서 죄짓게 만든다면, ‘잘못 가르친 죄’와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는 죄’에 대해서

엄중 경고하셨습니다(마태 18,6-7).

4) 예수님의 말씀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라는 말은,

모든 계명들과 율법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또는 소심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 쏟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가장 큰 계명’에 연결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신앙생활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생활입니다.

지키고 싶은 계명만 지키고, 지키기 싫은 계명은

안 지키는 것은, 또 지키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이 정도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대충 지키는 것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은 대충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완벽주의가 아니라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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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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