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수)
(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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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법을 연구할 시간에 수난을 묵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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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25 ㅣ No.188440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서늘한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마태 5,17)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율법의 '한 자 한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위치는 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법은 조항의 준수가 아니라, 법을 제정한 이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법을 연구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과,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여 사랑으로 도약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한지 그 차이를 명확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바리사이들과 같은 '법의 연구자'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아주 꼼꼼히 공부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고약합니다.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 '안 걸리고 덜 할까', 혹은 '법을 이용해 내 배를 채울까'를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1596)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보십시오. 그는 법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그는 계약서에 적힌 "심장 근처의 살 1파운드"를 당당히 요구합니다. 법정에서 그는 외칩니다. "내가 법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소!" 하지만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십시오. 그가 정말 법의 정의를 사랑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법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의 잔인한 복수심과 탐욕을 합법화하려 했을 뿐입니다.

이와 비슷한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영화 '한나 아렌트' (2012)에서 다룬 홀로코스트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입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유다인을 가스실로 보낸 장본인이지만, 재판 내내 당당했습니다. "나는 단 한 명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직 국가의 법과 명령을 철저히 지켰을 뿐입니다!" 그는 칸트의 철학까지 인용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법을 연구하여 '최소한의 처벌'을 피하려던 그의 모습은 인간의 영혼이 법의 문자 뒤에 숨을 때 얼마나 잔인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법조차 '안 걸릴 만큼만' 지키려는 자들은 이처럼 법을 이용해 자기 욕망을 채우는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나의 욕망, 곧 탐욕과 성욕, 교만을 줄이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법을 통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를 보십시오.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네 죽음은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니 딴 맘 먹지 말고 당당하게 죽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법적 생명보다 더 큰 가치인 '조국'을 사랑했기에 집착을 버린 참된 자유를 누렸습니다. 선조들의 피를 묵상했기에 용서의 법을 초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창립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수난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독립을 위해 피 흘린 선열을 기억하며 나라를 사랑하게 되듯, 우리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수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이가 부모님의 고생을 묵상할 때 진정한 효자가 되듯, 수난을 묵상할수록 우리는 더 완전하게 법을 지킵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어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을 넘어 사랑이 갈구하는 '최대한'을 살기 때문입니다.

나폴리의 천재 법학자였던 그는 16세에 법학 박사 학위를 땄고 8년간 단 한 번도 재판에서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법을 연구하고 승소할수록 자신의 영혼이 메말라가고 오만해지는 '영적 사후경직'을 경험했습니다. 결정적인 재판에서 패배한 후 그가 찾아간 곳은 법전이 아니라 십자가 앞이었습니다. 그는 "법은 나를 교만하게 했지만, 주님의 수난은 나를 눈물 흘리게 했다"라고 고백하며 자비의 성자로 거듭났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이 성장하려면 '어떻게 법을 안 어길까'를 연구하는 머리에서, '어떻게 주님을 더 행복하게 해드릴까'를 고민하는 가슴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법의 조항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평생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수난을 묵상하며 제정자를 사랑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계명 하나를 지키면서도 그 너머에서 미소 짓고 계시는 주님의 얼굴을 만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마태오 복음 주해』에서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법이 짐이 아니라 날개다. 날개는 무겁지만, 그 날개 덕분에 새는 하늘을 난다."

이번 사순 시기, 의무의 감옥을 뚫고 사랑의 기쁨으로 도약합시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의 수난을 묵상합시다. 그 사랑이 여러분 안에 가득 찰 때, 여러분은 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의 나라에 이미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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