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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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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의 신화는 성서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창조, 홍수, 바벨탑, 낙원의 이야기는 성서의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고대 근동의 신화는 수메르어, 아카드어, 바빌로니아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성서의 언어인 히브리어보다 700년가량 먼저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성서의 이야기는 고대 근동의 신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성은 비슷하지만, 그 결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같은 마트에서 재료를 사지만 제가 사서 요리하는 것과 유명한 주방장이 요리하는 것은 맛과 품격이 다릅니다. 창조, 홍수, 바벨탑, 낙원이라는 재료가 있지만 고대 수메르의 언어로 기록된 길가메시의 신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엄격한 계급으로 구분합니다.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신들의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홍수를 내린 것도 인간이 늘어나서 시끄러워져서 홍수를 내린 것이라고 합니다. 홍수를 내렸지만, 신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릴 사람이 필요해서 ‘우트나피쉬팀’만 살려 주었다고 합니다. 우트나피쉬탐은 신들의 노예처럼 제사만 지내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재료이지만 성서의 이야기는 다르게 전개됩니다. 하느님은 자신들의 일을 맡기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고, 세상을 다스리도록 권한을 주셨습니다. 홍수는 세상이 타락하고 악해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의로운 노아와 가족 그리고 식물과 동물을 배에 태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지개로 새로운 계약을 맺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심판하고 벌하는 분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분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모세의 십계명보다 훨씬 먼저 있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틀’은 ‘동태복수법’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십계명과 율법의 ‘틀’은 ‘자비와 용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노예와 과부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한때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지 않았느냐?” 구약성서에서 사람은 하느님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함께하는 동반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내가 자비로우니,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2026년 세계의 종교 인구를 보면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신자가 55억 명 정도 됩니다. 기타 종교 인구가 13억 명 정도 됩니다. 무신론과 불가지론으로 종교가 없는 사람은 12억 명 정도 됩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86% 정도 되고, 종교가 없는 사람은 14% 정도 됩니다. 과학이 발전하였고, 진화론이 생명의 신비를 푸는 열쇠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은 종교, 신화, 신에 의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축구와 야구는 게임의 규칙이 다릅니다. 축구게임에 야구의 규칙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구 게임에 축구의 규칙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축구와 야구는 게임의 규칙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축구는 축구인의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야구 역시 야구인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축구와 야구만큼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의 방법론과 종교의 방법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축구와 야구가 조화롭게 공존하듯이, 과학과 종교 역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리가 없는 과학은 사람과 자연을 파괴하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근대의 역사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지금도 인류가 만든 무기는 모든 인류를 죽일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이 있습니다. 이성이 없는 종교는 광신과 광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종교는 합리적인 이성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잘못이 있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잘못에 대해서 인류와 역사 앞에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과학은 앞으로도 분석과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규칙과 법칙을 찾거나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 또한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유용한 학문입니다. 종교는 과학으로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번뇌와 고통을 위로하고, 인간의 품격을 한 차원 높이는 길을 갈 것입니다. 이 또한 인류가 쌓아온 삶의 지혜입니다. 과학으로 멋진 도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종교는 멋진 도시에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을 구성하는 원자들을 연구하였습니다. 이 원자들은 모여서 분자가 되고, 분자들은 또 모여서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됩니다. 어떤 것들은 생명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우리 눈에는 사라지는 것 같지만 우리의 몸을 구성했던 모든 분자, 원자들은 없어지지 않고, 또 다른 형태를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100여 개의 원자들이 모여서 형태를 이루고, 생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을 우리는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그 행위에 따라서 또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열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유한한 몸은 변화하고, 생명의 불꽃은 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준다고 믿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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