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수)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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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는 신앙인일수록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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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신 [93solangia] 쪽지 캡슐

2026-03-17 ㅣ No.188553

달에 한 번 있는 성체조배실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보통 매일 있는 새벽미사 한 시간 전에 거행됩니다. 제가 전례 단원이긴 한데, 희한하게 늘 조배실 미사 때 독서를 맡습니다. 본당 전례(독서, 해설) 단원이 30명가량 되는데요. 제가 자매이고, 또 유일한 청년단원이라 베테랑 단원들에게 평가받는 것만 같은 기분(아무도 평가하지 않으시지만요)을 떨치기 어려운데, 오늘 다른 단원들이 대거 참례하여 모처럼 긴장됐습니다. 오늘은 미사 15분 전에 부탁받았는데 독서, 화답송, 복음환호송을 딱 한 번씩만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연습하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안정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일례로 성지에 가면 종종 해설&독서 봉사를 합니다. 아예 연습을 하지 않고 올라갔음에도 하느님께서는 마치 수차례 연습한 사람이 선포하는 것처럼 도와주시더군요. 첫 독서 때도 그랬습니다. 제단 위에서 입이 얼어붙었을 때, 하느님을 애타게 찾으니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곧바로 느려진 경험이 있습니다. 당신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이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심을 자주 느낍니다. 

 

부끄럽지만 가끔 일 때문에 독서 연습을 게을리하기도 합니다. 그땐 도와주지 않으셔서 자괴감 드는 봉사를 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그런 날에는 제단에서 내려오면 거의 죽을 맛입니다. 제대에 눈을 못 마주칩니다. 제가 제 죄를 알린 셈입니다. 매달 4-5번은 독서를 하므로 야매(속된 말을 써서 죄송합니다) 통계상 믿을만한 신앙 체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컨대 하느님께서는 저의 모든 걸 아신다는 겁니다. 노력의 여부조차도요. 절대 숨겨지지 않지요. 게을리했던 경험을 얘기할 수 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에 쓰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숨겨지는 일이 아니므로 공개하나, 공개하지 않나 똑같기에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아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아신다는 게 더 부끄럽고 싫습니다.

 

이제 사라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을 믿었지만 소위 신앙적으로 배운 사람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말을 의심 이후에도 따끔하게 경고만 받습니다.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아니다. 너는 웃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창 18,15)] 반면에 즈카르야는 배운 사람에다가 사제였으므로 즉시 벙어리가 됩니다. 사라와 즈카르야가 차등적용 되었듯 신앙인들도 하느님 앞에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예비신자는 은총을 많이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아가고, 이미 믿고 있는 자도 다수지만 신앙적으로 배웠다고 말하기는 어렵기에 더 많은 자비와 격려를 보내주시기에 그런 말이 있는 게 아닐는지 추측해 봅니다. 

 

여하튼 하느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 부정하는 것과 잘 아는 사람이 부정하는 것. 그리고 몰라서 못 하는 것과 알아도 안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또한 신앙적 앎이 깊어질수록 지킬 것도 많아지지만 그만큼 지키지 못하는 부분도 많아지므로 죄도 많이 저지릅니다. 그래서 많이 알수록 고해소를 자기 집처럼 드나들게 됩니다. 반대로 앎이 얕은 사람은 그걸 지켜야 하는지 모르기 대문에 지키지 않더라도 스스로 죄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죄지은 게 없지만 판공성사라 성사를 보러 왔다고 말하는 이도 다수라고 합니다. 

 

1) 도우실 뜻이 없으시더라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유딧 8,15) 하느님께서는 도와줘야 하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돕지 않으시더라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때, 즉 당신께서 보시니 좋은 모습을 갖추었을 때 도와주실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사라와 즈카르야처럼 신앙인들도 개개인의 신앙 수준에 따라 차등적용 된다고 생각하면 여러 공부를 하면서 기쁨도 있지만 몹시 불안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푸념을 가끔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법이지요.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으로 잠시 벙어리가 된다고 한들, 그것도 제 복으로 생각하렵니다. 

 

오늘은 두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제목에는 두번째 이야기의 요점만 적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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