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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3월 18일 사순 제4주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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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8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중국의 분서갱유, 나치의 책 화형식, 기원전 3세기 세상의 모든 책을 모았다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탄 것 등등…. 이렇게 책이 사라진 것은 이야기가 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거의 100년 동안 불온서적의 역사가 있습니다. 권력자들이 각종 명목으로 특정한 책 판매와 유통은 물론이고 읽기까지 금지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공산주의적 견해와 사상을 지적하면서 책을 없앴다면, 지금은 ‘젠더’와 ‘페미니즘’이 공동체를 위협하는 ‘불온사상’ 취급을 받습니다.
혐오를 통해 특정한 생명을 공격하고 취약한 이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면서 세상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이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자기의 판단을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책을 경기도의 중학교 두 군데에서 학생들 열람을 제한했고, 한 여고는 음란한 묘사라며 책을 폐기했습니다. 청소년들의 유익하지 않다는 보수단체의 낙인찍기 민원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문학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문학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예수님을 판단하는 경우가 정말로 많았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자기 위주로 무조건 판단하고 단죄하는 마음이 어쩌면 우리 인간의 모습일까요?
당시 유다교 랍비들은 하느님의 생명과 심판의 일은 안식일에도 계속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도 동일하게 안식일에도 일할 수밖에 없음을,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분노합니다.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여기는 신성모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5,19)라고 하시면서 두 분은 분리될 수 없는 완전한 일치 속에 있다고 하십니다.
이 일치는 사랑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드러나며, 아들은 그 사랑에 순명하여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세상에 그대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명확하게 답하십니다. 단순한 예언자나 도덕 교사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심판하실 권한을 가지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만 옳다는 교만으로 하느님의 뜻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끊임없는 교만 속에 사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마음 속으로만 하는 감사는 누구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르푸드 스타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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