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0일 (금)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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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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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3-19 ㅣ No.188584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식별(discernment)’입니다. 통찰력, 판단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당에서 매주 주일에 음식 나눔이 있습니다. 구역별로 음식 준비를 합니다. 매달 마지막 주는 가족의 날로 음식 나눔이 없습니다. 재료 준비와 음식 나눔은 큰 어려움이 없는데 500명이 먹는 음식의 설거지가 늘 어려움이었습니다. 형제님들이 수고해 주시는데, 다들 힘들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회용 그릇 사용이 늘었습니다. 설거지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환경문제와 위생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주 성당 청소하는 용역회사에 설거지만이라도 맡기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매주 음식 나눔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2명이 주일에 3시간씩 설거지와 뒷마무리만 해 주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설거지에 대한 부담도 줄고, 환경문제와 위생 문제도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큰 부담이 없는 비용이라면 한번 시도 하려고 합니다.

 

음식 나눔에 대한 설거지 문제는 식별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체가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문제는 쉽게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회사의 운명이 걸린 문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한번 내린 식별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잘못된 식별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그래서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시기와 질투가 잘못된 식별로 이끌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로봇이 3원칙이 있습니다. 로봇의 3원칙은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의 기본 윤리를 설명합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인간이 해를 입도록 방관해서도 안 됩니다. 둘째,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 명령이 인간을 해칠 때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셋째, 로봇은 자신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 보호는 인간의 안전과 명령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 모든 원칙의 최우선 가치는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며, 그런 다음이 인간의 명령, 마지막이 로봇 자신의 보호라는 질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도 식별의 기준이 있습니다. 식별의 기준은, 우리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움직임은 깊은 평화와 기쁨,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더해 주며, 우리를 겸손과 봉사, 공동체적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반대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움직임은 겉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결국 불안과 혼란, 자기중심성과 고립을 낳습니다. 따라서 식별은 단순히 기분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나를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지, 더 큰 사랑과 선을 향하게 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영적 분별의 과정입니다.

 

저도 나름의 식별 기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 안에서 제 마음의 움직임을 오래 바라보려 합니다. 평화가 있는지, 겸손이 있는지, 사랑이 남는지를 살피려 합니다. 맹자가 말한 사단,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인간 안에 이미 주어진 도덕의 씨앗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측은지심으로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바로 측은지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늘나라에서는 더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수오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양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봉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시비지심입니다.

 

오늘 나의 식별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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