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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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숨어 있는 소죄 대청소 없는 판공성사는 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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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3-20 ㅣ No.188609

 

어제 오전 9시에 장례미사 참례 후 화장장에 갔습니다. 사실 어젠 원래는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장례미사만 참례하고 집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전 날 저녁 9시에 혼자 연도를 갔습니다. 그것도 자칫 잘못하면 가지 못할 뻔했습니다. 원래 장례가 발생하면 레지오 단톡방에 부고가 올라오는데 정상대로라면 화요일 올라와야 합니다. 제가 협조단원으로 있는 것도 그래야 레지오톡을 이용해 본당 부고소식을 들을 수 있기 때문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근데 수요일 날 잘 지내는 교우님 저는 단장님이라고 합니다. 호칭을요. 제가 영세를 받았을 때 저를 선교한 자매님과 같이 본당 일 때문에 모이면 그당시 단장님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전에 이미 꾸리아 단장을 하셔서 그렇게 했던 모양입니다. 

 

저도 그래서 성당엔 상당히 호칭이 애매할 때가 많아 그냥 그렇게 언제 부르겠다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과 식사를 하고 사무실에 잠시 들러 이야기했을 때 장례가 발생했다는 부고 소식을 구두로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하루가 지났는데 없다고 말하니 어제 레지오마치고 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단장님은 연도를 했기 때문에 올리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 저는 만약 그제 단장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연도도 가지 못했고 또 어제 장례미사까지도 참례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마침 장례식장은 보통 본당 바로 건물 근처에 있는 병원인데 다른 곳이더군요. 집과도 불과 5분 거리에 있어서 가 혼자 연도를 했습니다. 

 

단장님은 제가 그래도 약 15년 다녀 알 거라 했는데 대충 연세도 어느 정도인지 정보를 듣고 갔는데 사진을 보고도 전혀 모르겠더군요. 아마 상당히 젊은 시절에 찍은 사진이라 그랬던 모양입니다. 유족분께 부고가 없어서 장례미사 시간을 문의해 알고 귀가했습니다.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참례하고 고별식을 할 때 유족이 나가는데 제가 사실 지금 시력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타가 간혹 최근 많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군동기 하나를 어렴풋이 봤습니다. 고인되시는 형제님의 성을 알고 있었고 또 그 동기 같은 애 이름에서 성만 기억이 났는데 같이 공교롭게도 동일하니 당연히 그래서 군동기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고별사 간단히 한 후에 퇴장을 할 때 알아보는 것입니다. 

 

33년 전 군동기라 화장장까지 갔던 것입니다. 작은 삼촌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걸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 삼천포로 약간 흐르긴 했습니다. 화장 중에 따로 유족들 기도하게끔 마련된 곳에서 연도하는데 톡이 조금 오는데 뭔가 문의를 해 시간 있을 때마다 답을 줬습니다. 그분이 판공성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분이 하신 이야기가 있어서 좀 묵상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판공성사를 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신부님도 아니고 판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경험담을 통해 혹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걸 한번 참조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어제 마침 묵상도 화장장이고 해서 잘 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마치 판공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 법으로 비유하자면 파산을 거쳐 청산절차를 하는 민법상 의미와 같은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어제 영성체 전에 보통 사회자가 안내멘트를 항상 합니다. 주의사항을요. 천주교 신자만 할 수 있다고요. 항상 그랬습니다. 근데 처음으로 할 무렵에 신부님이 다시 한 번 더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다시 공지를 하는 건 말입니다. 순간 그때 생각한 게 아마 유족들이 상당히 많은 사람이 냉담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 그 군대동기도 어려서 세례를 받았더군요. 아마 지금 냉담을 하는 모양입니다. 울산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화장장에서 다양한 묵상을 한 것입니다. 

 

성사는 당연히 기본원칙이 대죄를 기준으로 합니다. 또 이런 경우는 있겠죠. 고백거리가 없어서 핑계삼아 소죄를 고백하는 사람도 말입니다. 아무튼 대죄를 기준으로 합니다. 어제도 많은 묵상을 했지만 새로운 묵상을 한 게 있습니다. 특히 또 부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교회의 공식적인 두 번의 판공에 있어서 주의할 점이 무엇인가를 곁들여 묵상한 것입니다. 부활을 앞두고 어느 본당할 것 없이 부활맞이 대청소를 합니다. 대청소는 소청소의 반대가 아닙니다. 언어유희입니다. 대청소는 대대적으로 범위를 넓혀서 하는 걸 말합니다. 이처럼 특히 판공을 앞두고는 이런 의미로 대청소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말입니다. 

 

성사를 청소에 비유했을 때 그럼 아주 드러운 곳만 청소를 해야 됩니다. 아주 더러운 곳이 죄로 비유하면 대죄입니다. 청소를 하는데 아주 더러운 곳만 집중으로 해서 만약 했다고 한다면 과연 그 청소가 제대로 된 청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판공을 앞두었든지 아니면 평소 성사를 볼 때 성사에 임하는 자세가 바로 이처럼 성사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역시도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겁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해서 제대로 된 판공이나 성사를 보게 되면 모조리 소죄도 고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건 이것과는 별문제입니다. 

 

여기서 청소를 한다는 건 특히 소죄는 고백은 하지 않지만 그 소죄도 충분히 성찰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제대로 정말 제대로 성찰을 해 그것마저도 진정 통회하는 심정으로 통해를 하게 되면 순간 생각이 안 나는데요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교리상 어떤 건 물론 대죄는 아닙니다만 소죄 같은 경우는 고백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하면 사해지는 이론이 있습니다. 즉 고해를 하지 않고도 말입니다. 마치 미사 때 자비송할 때 소죄도 사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만약 했다고 했을 때 진정으로 말그대로 온전한 부활맞이 아니면 성탄맞이 제대로 된 판공이 될 것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얼렁뚱당하는 판공은 말만 판공이지 짜가 판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죄를 성찰할 때 보통의 경우 만약 그것도 한다고 했을 때 자신이 직접 그나마 대죄라고 인식할 정도의 것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런 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봤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자주 간과하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성찰할 때 눈에 보이는 다시 말해 자신이 발견할 수 있는 죄만 보려고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부터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목욕탕 청소를 할 때 묵상한 것이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 알은 게 있습니다. 이게 아주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아 소개드립니다. 두 경우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비치 베드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선베드입니다. 왜 그 사우는 여탕만 그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것도 청소를 합니다. 생각보다 때가 많습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언제 한 번 우연히 밑을 보게 됐고 또 벽쪽으로만 붙여 있었기 때문에 벽과 접촉하는 면을 보게 된 것입니다. 너무 놀라웠습니다. 물론 그 전에 한 사람도 제대로 청소를 잘 안 했을 겁니다. 또 굳이 청소하는 사람이 그것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밑에와 옆이 완전 엉망이었습니다. 제가 안 봤으면 모르는데 그걸 본 이상 안 할 수가 없더군요. 솔직히 안 해도 되긴 됩니다. 또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좀 교양있게 기물 같은 걸 제대로 사용하고 에티켓 같은 게 있었다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했을 겁니다. 그런 걸 보면 별로 뭐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참 정말이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게 뭔지 제대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 말입니다. 왜 그때 그 생각이 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그 상황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렇다고 별로 사람들이 깨끗하게 사용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또 하느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원수까지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사랑하는 맘으로 조금난 신경써서 잘 청소를 해 주자는 생각을 해 정말 지저분한 곰팡이까지 해서 말끔히 다 청소를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한 건 제가 만약 사우나를 이용하는 고객이고 또 그런 시설을 이용하는데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 여자분 회원들을 생각하니 정말 알든 모르든 하느님을 믿는 죄로 해주었습니다. 그래도 하고 나서 보니 그분들이 제가 그런 마음으로 한 걸 알든 모르든 마음은 상쾌했습니다. 

 

이젠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엄청 중요한 깨달음 같은 걸 느꼈습니다. 탕 출입구 문입니다. 저는 청소를 할 때 탕 안으로 들어가 그러니 내부에서 실제 탕 내부 말입니다. 그 안ㅇ로 들어갈 때는 문이 열려 있는 경우도 있고 닫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보면 열려 있습니다. 그럼 두 문이 한쪽으로 겹쳐 있게 되겠죠. 나갈 때는 당연히 열어둔 상태로 청소를 하기 때문에 또 사람이 탕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열려져 있는 상태로 나가게 됩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문을 움직여야 할 상황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닫아야 하는 경우입니다. 그때 정말 놀라웠습니다. 

 

겹치는 부분에 뒤쪽 공간과 또 문 손잡이 쪽 그러니까 사우나를 마치고 외부로 나가려면 문을 열기 위해서는 그 손잡이를 잡고 열고 그렇게 해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일인데 순간 무슨 생각을 했냐하면 저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손잡이 부분에 눈길을 둘 일이 없었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청소를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이죠. 그때 그게 그렇게 더러운 것도 충격이었지만 더 충격은 그런 걸 보고도 누구 하나 주인한테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또 더 놀라운 것은 주인 아주머니도 수시로 여탕을 출입하면서 그걸 매일 봤을 텐데 어떻게 주인이 그런 걸 보고도 차라리 저한테 말을 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자기 영업장이라 조금 청결유지를 위해 청소를 해도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고 그런 상태로 사람들이 탕을 출입했다는 게 충격도 충격이지만 완전 멘붕이었습니다. 살다 살다 오만 경험을 다 한다는 생각에 너무 얼척이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날 제가 선베드도 청소를 했고 또 그 출입구 문도 분리를 해서 중간에 겹치는 부분도 말끔히 해 줬습니다. 손잡이도 다 했습니다. 문 겹치는 곳에 그렇게 까만 때가 있는데 그걸 보면서 그냥 다녔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정말 엄청 중요한 걸 알긴 했지만 말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영혼의 죄를 청소할 때 오늘 이 경험을 정말 평생을 두고 두고 잘 기억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하루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그때 그 두 청소를 생각하며 운전을 하면서 엄청 많이 생각한 게 그렇게 청소하지 않고 다니는 그 사우나 사람들이 마치 우리 신앙인들 모습과도 어쩜 이렇게나 같을지 생각하니 한편 온몸에 소롬이 돋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정말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판공을 떠나서 성사를 보기 앞서 죄를 성찰할 때 마치 이런 걸 잘 묵상하면 어떻게 죄를 성찰해야 즉 그렇게 해야 그 더러운 죄를 고해를 통해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맨날 그 더러운 문을 매일 통과하는 그 사우나 회원의 모습과 정말 같은 모습의 신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글이 너무 길었죠.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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