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1일 (토)
(자)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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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 성경 연구로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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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6:50 ㅣ No.188622

오늘은 사순 제4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을 목격합니다.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감동하여 "그분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믿음의 문턱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그들은 경비병들을 향해 조롱하듯 말합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성경을 연구해 보아라.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는다." (요한 7,52)

이 장면은 우리에게 아주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왜 성경을 그토록 깊이 연구하고 잘 안다는 사람들이 정작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왜 성경 연구가 오히려 믿음의 방해물이 되었을까요? 저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연구할수록 오히려 믿음을 잃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묘한 책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각자가 자기 안경을 쓰고 해석하기 시작하면,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을 정당화해 주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이비와 이단이 나오는 이유도 다 '성경 연구'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개인적인 성경 해석을 경계합니다. 먼저 교리를 믿으라고 가르칩니다. 교리는 성경을 보는 '정확한 안경'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교리입니다. 그 올바른 지식의 눈으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교리대로 성경을 두드려 맞추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중년에 『참회록』을 쓰며 신앙을 찾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가슴의 믿음'이 아니라 '머리의 연구'였습니다. 그는 기존의 복음서들이 교회의 교의에 오염되었다고 주장하며, 직접 그리스어 원전을 대조하여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들만 추려낸 『요약 복음서』(1881)를 펴냈습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나의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거짓으로 여기고 삭제했다." 그는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 수많은 기적, 삼위일체, 그리고 신앙의 핵심인 부활마저도 '이성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가위질해버렸습니다. 그에게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도덕적 철학을 증명해 줄 '참고 서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애초에 믿음이 자기 이성에 담길 정도였다면, 그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지 참 믿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게 아닙니다. 

결국 그는 1901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교회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고해신부를 보냈지만, 그는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는 일기에 "교회의 교의들은 나에게 독과 같다"라고 썼습니다. 성경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했던 이 대문호는, 결국 자신이 만든 '이성적인 성경'이라는 감옥에 갇혀 메시아를 거부한 채 아스타포보 기차역 차가운 바닥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습니다(출처: 앙리 트루아야, 『톨스토이 전기』; 레프 톨스토이, 『요약 복음서』 서문). 머리로만 하는 연구는 하느님을 내 지식 아래 가두는 교만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머리에 있는 지식이 가슴의 믿음이 될까요? 믿음은 머리로 동의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작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기억'을 통해 머리의 지식이 가슴으로 흘러 내려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지식의 결과라기보다, 그 지식이 ‘기억’이 된 결과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참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저에게 툭 던지듯 말했습니다. "야,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신 데 왜 외로워?" 처음엔 그 말이 머리로만 들렸습니다. '맞아, 교리에서 그렇게 배웠지. 임마누엘 하느님.' 하지만 제 가슴은 여전히 시렸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어두운 길을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될 때, 저는 친구의 그 말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데 왜 무서워하면 안 되지... 주님이 함께 계신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 이 교리를 무작정 기억하고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제 가슴 속으로 훅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 진짜로 주님이 함께 계시는구나!'라는 확신이 가슴으로 느껴졌습니다. 머리에 있던 '함께 계신 주님'이 가슴으로 쏟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단 한 번도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왜 말씀하셨겠습니까? 마치 올리브 열매를 강한 압착기로 눌러야 귀한 기름이 나오듯이, 우리가 배운 교리를 끈질기게 기억하고 되새기는 과정은 우리 영혼을 누르는 '압착'의 시간입니다. 계속 기억하려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에 있던 교리가 가슴으로 흘러가 '믿음'이라는 기름으로 바뀝니다. 믿음은 기억의 결과지 연구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성경을 '연구'했지만,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한 줄의 교리를 내 것으로 만드는 '기억의 사투'입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극심한 고통과 영적인 어둠 속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이 한 문장의 교리를 끈질기게 붙잡았습니다. 그녀는 일기 『한 영혼의 스토리』에서 고백합니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오직 어둠뿐이었지만, 저는 계속해서 '나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되뇌었습니다."

이 기억의 압착이 가져온 구체적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죽음을 앞둔 그녀의 폐가 완전히 망가져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천사 같은 평화가 감돌았습니다. 그녀를 간호하던 수녀들이 "데레사 수녀님, 어떻게 이 고통 중에 미소를 지을 수 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머리에 있던 '사랑의 하느님'이 기억의 사투를 통해 가슴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물리적 고통마저도 장미 꽃잎으로 느끼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한 줄의 교리를 끝까지 기억한 결과가 죽음의 공포를 삼켜버리는 완벽한 안식을 낳았습니다(출처: 성녀 소화 데레사, 『한 영혼의 스토리』; 기 고슈, 『소화 데레사 전기』).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기억했을 때, 비로소 당신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또한 교부 성 테오판은 "기도란 머리에 있는 생각을 가슴으로 끌어내려 그곳에 머물게 하는 기술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도 주님 말씀 하나라도 끊임없이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하고 싶은 한 마디를 수없이 되풀이하며 하루를 살아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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