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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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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뜨레아 모임에서 장기 자랑이 있었습니다. 한 팀이 준비한 연극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버스에 예수님이 타고 계셨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데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탔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탔습니다.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이 탔습니다. 일에 중독된 사람이 탔습니다. 도박과 알코올에 빠진 사람이 탔습니다. 사람들은 조금씩 예수님을 뒤로 밀어냈습니다. “제가 급합니다.” “제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뒤로, 더 뒤로 밀리다가 결국 버스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버스에 사탄이 올라탔습니다.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버스는 빠르게 지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웃으면서 본 연극이었지만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목자가 버스 운전사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버스 운전사는 승객을 가려 태우지 않습니다. 외모로, 직업으로, 재산으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태웁니다. 사목자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한 신자만이 아니라, 신앙이 약한 사람도, 상처 입은 사람도,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도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버스에는 정해진 노선이 있습니다. 운전사가 기분에 따라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사목자에게도 노선이 있습니다. 그 노선은 복음입니다. 세상의 유행도 아니고, 사람들의 기대도 아니고, 숫자와 성과도 아닙니다. 복음이 노선입니다. 그 길이 때로는 좁고 험해 보여도,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버스는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너무 빠르면 위험하고, 너무 늦으면 신뢰를 잃습니다. 사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급함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미루는 태도는 공동체를 지치게 합니다. 하느님의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버스 운전사는 난폭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급정거와 급가속은 승객을 다치게 합니다. 사목자도 말로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도 난폭 운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운전대를 세상 욕망에 넘겨주어서도 안 됩니다. 울뜨레아 연극에서 결정적인 장면은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뒤로 밀려났을 때,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내려오셨고, 그 자리에 사탄이 올라탔습니다. 방향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성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제자들은 영광의 길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노선을 지키셨습니다. 아무도 그분을 운전석에서 끌어내리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아버지의 뜻이라는 노선을 붙들고 가셨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누가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을까요?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는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고 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린 베로니카가 있습니다.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레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충실하게 따라갔던 이들이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유다의 삶이 전혀 달라졌음을 알게 됩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며 또한 희망을 버렸습니다. 희망을 버렸던 유다는 용서받을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유다는 쓸쓸하게 자신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유다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절망을 버렸습니다. 마음 안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용서받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완벽하게, 깨끗하게 살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과 허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잘못과 허물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정화해 주시는 하느님께로 우리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또한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저도 돌아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뒤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효율과 성과라는 이름으로 복음의 속도를 바꾸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성주간에 다시 운전대를 주님께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제 사목의 방향을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이 제 삶의 맨 앞자리에 계시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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