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7일 (화)
(백)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제가 주님을 뵈었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4/7) :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45 ㅣ No.188948

* 독서 : 사도 2, 36-41

* 복음 : 요한 20, 11-18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 <오늘의 강론>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은 부활 예수님께 대한 막달레나 마리아의 사랑이야기 2탄입니다. 사랑의 장소는 ‘동산’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처음 준비되고 이루어진 곳도 ‘동산’(에덴)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동산’에서 사랑으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듯이, 또 다시 ‘동산’에서 사랑으로 부활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십니다. 그렇게 ‘에덴동산’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소명을 주십니다.

두 제자는 이미 돌아갔건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차마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울다”의 원어의 뜻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큰소리로 통곡하여 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곧 사랑이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그 주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무덤을 들여다봅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습니다.”(요한 20,12)

성 그레고리우스는 천사가 있었던 “머리맡”“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는 사실을, “발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사실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곧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보고도 “그분이 예수님인 줄은 몰랐습니다.”(요한 20,14). 또한 그녀는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 20,15)라는 음성을 듣고도 그분이 누구신지를 몰랐습니다. 사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그랬고(루카 24,13-35),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의 일곱 제자들도 그랬습니다(요한 21,4).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낯선 이’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곧 부활 체험은 ‘낯선 이’ 안에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낯선 이’의 요청 안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분을 알아보는 ‘눈이 열리어’(루카 24,31)야 할 일입니다. 그분이 나를 이집트에서 불러내듯, 동굴에서 불러내듯 나를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 이는 당신이 더 이상 육신의 손으로 붙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손으로가 아닌 믿음으로 만지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이 아는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자신이 모르는 낮선 예수님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손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만지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든다.’고 말합니다.

결국, ‘부활’은 다름 아닌 사랑의 승리이며, 동시에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결코 그 무엇도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선포하고 증거 하는 일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일’입니다. 아멘.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

주님!

제 사랑이 아니라

당신 사랑에 붙들리게 하소서.

보이는 당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모든 것을 통해, 사랑이신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온통 사로잡히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4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