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
(백)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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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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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원 [sadan] 쪽지 캡슐

2026-04-07 ㅣ No.188950

 

자신이 어느새 바리사이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으면 격상입니다

 

내가 잠시 의식의 눈을 감았다 뜨면

감았을 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듯

신앙의 주체는 자신이며 객체는 주님이십니다

50 여년 예수님과 치열하게 싸우다보니

주님은 오직 나만을 위한 객체이시며

날 섬기러 이 세상에 내리셨음을 느끼게 합니다

 

성호 한번을 1 분 정도에 그으며

저높이 안주하신 삼위께서 번개처럼 내려오시어

마치 하인처럼 부복하게 하신 후에 본기도를 시작하듯이

처음 뵙는 신부님의 미사집전에 성호를 그으시는 모습에서

예수님과의 친근도를 측정하게 됩니다

 

동양난 꽃잎에 새겨진 문양은 난 전체의 잎의 형태를 표현하듯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양자배열이 달라졌기에 여인네들마저 알아채지 못하지만

우리 모두가 당신 모습처럼 부활하리란 예표이며

난꽃잎 문양처럼 난 전체의 근본은 변하지 않음을 확신하게 하십니다

 

, 삶전체에 새겨졌던 당신과의 친교는

우리의 부활후에도 일점 변함없이 드러난다는 생각입니다

 

대데레사께서 심지어 칠궁방에서조차

하느님을 두려운 분으로 표현하셨듯이

대부분 성인들께서 특히나 비오신부님께서는

더더욱 그러하심이 안타깝게 합니다

 

손녀들 사진만 봐도 눈가가 뜨끔해지며

그들을 위한 내 목숨은 낙엽보다 하찮음을 당연하게 여기듯

예수께서는 오로지 우리라는 손주를 섬기기 위하여

스스로 가시관과 못을 박고

옆구리에 구멍을 내셨듯이

어느순간에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멱살잡고 치열하게 싸우며 따져갈 때

서로를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하고 가까워지게 되듯이

특히 평시에 신체적 특정감각으로 언제나 함께 하심과

순간조차도 권두마냥 졸졸 붙으며 눈치만 살피심을 느끼게 함은 물론

그분 꿈조차 나만 바라보신다는 느낌은

주님께서 말씀하셨듯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요한 10.35) ”

우리 모두는 신이라는 자격을 지우지 못하게 합니다

 

과연 신앙의 주체인 신적인 자신이

섬기러 오신 하인을 두려워해야 한다면

섬김의 근원인 

손녀의 분부만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자녀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연유도 있겠지만

, 하느님할애비의 손주만을 위한 치열한 희생적 사랑인

부활의 시도가

자칫 영광의 각도로 해석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바리사이처럼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보다 더 밝은자가 되어야함이

예수께서 우리게 마땅히 강요하시는 것이기에

바리사이처럼 묻고 따질 때

두려움 섞인 찬미찬양 각도보다

그분과의 친근도가 격상될 수도 있겠으며

부활 후 자신의 양자배열은 난꽃잎 예표처럼

주님과 하나임이 퍽이나 아름답게 표출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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