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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부활 신앙에 이르는 성경 읽기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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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제대로 읽는 법: 부활 신앙에 이르게 하라!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루카 24,25-26)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빠져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주님의 제자들이었으면서도, 그리고 빈 무덤의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믿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성경을 '나의 눈'으로만 읽었기 때문입니다. 왜 성경을 읽으면서도 주님을 몰라보는가: 자기중심적 해석의 늪 유다인들은 성경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요? 이 모든 오류의 공통점은 '자기 위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한 것'입니다. 한 철학적인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에 가로등 밑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행인이 함께 찾아주었지만 열쇠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행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서 잃어버리셨나요?" 그러자 그 사람이 어두컴컴한 골목 끝, 십자가가 서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구석진 곳입니다." 행인이 황당해서 물었죠.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계십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거기는 너무 어둡고, 여기는 가로등이 있어 밝으니까요." 유다인들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이 '낮고 천한 곳', '고통받는 십자가'에서 일하신다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밝고 화려한 곳, 즉 승리와 번영이라는 '나의 욕망'의 가로등 밑에서만 메시아를 찾았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하느님만 찾으려 할 때, 성경은 진리가 아니라 나를 정당화하는 '잔소리'가 되고 맙니다. 성경은 예언의 성취이며 가슴을 뜨겁게 하는 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루카 24,27).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식은 '나의 욕망'을 버리고 '예언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구약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 예언이고, 신약은 교회를 통해 우리 삶에서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예언의 성취가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2세기 교회 학자인 성 유스티노(St. Justin Martyr)는 진리를 찾아 헤매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지만 가슴은 늘 공허했습니다. 어느 날 해변을 걷다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은 유스티노에게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진리를 추측할 뿐이지만, 예언자들은 성령에 사로잡혀 진리를 직접 보고 기록했소. 그들의 말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보시오." 유스티노는 즉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년 전 예언자들이 말한 '고통받는 종'의 모습이 나자렛 예수의 십자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된 것을 목격하는 순간, 그의 가슴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는 『유다인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내 영혼에는 즉시 불이 타올랐습니다. 예언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한 사랑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비로소 이 철학만이 안전하고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성경의 예언이 실재임을 깨닫고, 그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기쁘게 목숨을 바쳤습니다. (출처: 성 유스티노, 『유다인 트리폰과의 대화』 제8장) 현대에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스콧 한은 원래 가톨릭을 싫어하던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오직 성경'만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서학을 깊이 파고들수록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탈출기의 '파스카 어린양'의 예언과 요한 묵시록의 '천상 잔치'가 역사 속 어디에서 성취되고 있는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호기심에 가톨릭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사제가 빵을 들어 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라고 선포하는 순간, 그는 벼락을 맞은 듯 전율했습니다. 수천 년 전 구약의 제사와 예언이 지금 이 제대 위에서 빵의 형상으로 실재(Real Presence)가 되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어왔지만, 미사 안에서 성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예언은 글자가 아니라 성체라는 살점이 되어 내 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와 직업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회심했습니다. 그에게 성경은 더 이상 연구 대상이 아니라, 미사를 통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살아있는 잔치'가 되었습니다. (출처: 스콧 한, 『어린양의 제사』 1999) 이번 부활 시기, 우리도 엠마오의 길을 걸읍시다. 성경을 펴서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내 자존심과 욕망의 안경을 벗고, 예언의 성취라는 사랑의 렌즈로 성경을 보십시오. 구약은 예수님에 의해 완성되지만, 신약은 교회, 곧 우리에 의해 완성됩니다. 성경의 가장 완벽한 해석은 우리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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