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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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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루카 24,13-35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제자는 주님께서 죽으신 후 깊은 실의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시며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런데 어제 복음에서 마리아가 그랬듯, 오늘 복음 속 두 제자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지요. 그 이유에 대해 루카 복음사가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눈이 나빠 제대로 안보여서 주님을 못알아본 게 아니라, 세속적인 뭔가가 그들의 눈을 가려서 ‘보고도 보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린 것일까요?
그들이 예수님께 했던 이 말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가장 경계하셨던 잘못된 인식과 기대, 즉 ‘왜곡된 메시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랬듯 ‘메시아’를,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자기들을 이끌어 로마를 물리치고, 독립과 번영을 가져다 줄 ‘정치적 군주’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메시아’라고 기대했던 예수님이 반대자들의 손에 붙잡혀 너무나 무력하게 수난당하고 죽으셨으니 실망과 충격이 컸겠지요. 그렇게 모든 희망을 잃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고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낙향’하는 길이었지요.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 대한 그런 오해와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리어 자기들 앞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이 그런 오해와 편견을 가진 것은 ‘탐욕’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그분의 능력과 힘을 이용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이룰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과한 욕심이 마음에 들어차면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가 되지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만 봅니다. 그랬기에 그 모든 기대와 바람이 무너지고 예수님께서 바라셨던 대로, 다시 말해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자 그들은 ‘눈 뜬 장님’이 되고 맙니다. 눈을 뜨고는 있는데 어디를 봐야할 지, 무엇을 봐야할 지 모르는 채 무지와 절망의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 곁으로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참된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또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힘과 능력이 부족해서 당한 ‘사고’가 아니라,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한 ‘순명’이었음을, 결국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그분께서 바라시는대로 다 이루어졌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 깨달음이 두 제자에게는 ‘구원의 진리’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겁게 타오르게 만들었지요. 그 덕에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자기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경에 담긴 주님 말씀이 내 마음을 희망으로 뜨겁게 타오르게 하는 ‘구원의 진리’가 되고 있습니까? 성체성사 안에서 분명히 현존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알아보고, 그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심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래야 주님의 부활이 나에게 참으로 기쁜 일이 되지 않을까요?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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