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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밤에 찾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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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니코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안에서 오래 풀리지 않던 물음을 안고 예수님 앞에 선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스승이라 불릴 만큼 말씀도 알고, 율법도 알고, 사람들에게 존중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자리와 같지 않습니다.
충분히 잘 살아온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물음이 조용히 마음을 건드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 삶이 정말 맞는가.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은가.
아마 니코데모도 그런 밤을 지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요한 복음에서 밤은 단지 시간을 말하지 않습니다. 밤은 내적 어둠을, 빛을 찾고 있지만 아직 다 보지 못하는 상태를 드러냅니다. 니코데모는 바로 그 밤 속에서 예수님께 옵니다. 겉으로는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 길을 다 찾지 못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밤이 그를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갈망을 품게 됩니다. 특별히 인생의 한가운데쯤에 이르면 그런 마음이 더 깊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남고, 많이 알고 많이 이루었지만 정작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은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니코데모의 걸음은 그런 갈망에서 시작된 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에서 태어나야 한다.”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먼저 묻게 됩니다. 위는 무엇이고, 아래는 무엇일까요.
요한이 말하는 ‘위’와 ‘아래’는 단순한 공간의 구분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과 근원을 가리킵니다.
‘아래’는 내가 보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붙잡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내 경험과 생각, 내 기준과 계산 안에서 움직이는 삶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도 그 안에는 늘 불안이 있고, 놓치지 않으려는 긴장이 있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남습니다.
반대로 ‘위’는 하느님께로부터 시작되는 삶입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삶,
내가 쥐고 있는 삶이 아니라 맡겨지는 삶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시간을 되돌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출발점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중심이던 자리에서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자리로, 내가 이끌던 삶에서 그분께서 이끄시는 삶으로 조용히 옮겨지는 것입니다.
니코데모는 이 말씀을 듣고 묻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니코데모만의 질문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이 품어 온 질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어떻게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새롭게 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곧바로 설명으로 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스쳐 지나가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바람은 손으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내가 방향을 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지나가며 나뭇잎을 흔들고, 공기를 바꾸고,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성령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계획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안으로 불어오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굳어 있던 것을 흔들고,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메마른 삶 안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내가 나를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내 삶이 하느님의 바람에 열리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한 다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 알 수 없어도 그 바람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거듭남은 도덕적으로 조금 더 나아지는 일이 아니라, 내 존재의 참된 근원이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인간의 참된 본질은 성공이나 체면이나 역할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데 있습니다. 위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그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니코데모는 그날 밤 이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말씀은 우리 안에 남아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자라납니다.
니코데모에게도 그날 들은 말씀이 그렇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십자가 아래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지는 것을 봅니다. 그날 밤에는 뜻을 다 알지 못했던 말씀이 이제는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말씀, 그 말씀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니코데모는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의 죽음을 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는 그제야 위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 아래에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 말씀은 단지 한 관계를 맡기는 말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새로운 생명의 질서가 열리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은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또 하나의 시작을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신 성모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신비로운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위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십자가 아래에서 시작되는 삶인지도 모릅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던 삶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하느님의 생명이 새롭게 시작되는 삶 말입니다.
성령의 바람 안에서,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성모님의 모성 안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설명으로 다 풀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받아들이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혼자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열어 주신 구원의 길 안에서 새 생명으로 이끌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위에서 태어나라는 말씀도, 성령의 바람도, 십자가도, 모두 우리를 살리기 위한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죽은 뒤에만 얻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생명입니다.
닫혀 있던 사람이 열리고, 두려움에 묶여 있던 사람이 믿음으로 나아가고, 자기 힘만 의지하던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에 자신을 맡기기 시작할 때, 그 생명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니코데모는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아직 다 알지 못했고, 아직 다 믿지 못했고,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둠 속에서도 예수님께로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걸음은 마침내 십자가 아래까지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신앙은 처음부터 다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한 말씀을 마음에 품고 어둠을 지나 마침내 십자가 아래에 서게 되는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니코데모처럼 묻게 됩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내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번에 주어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품고 주님 앞에 서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내 힘으로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생명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미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이끄는 은총의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위의 글은 이상각 신부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출처]“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밤에 찾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 블로그https://blog.naver.com/rsony4u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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