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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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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사 경본에서 읽었던 기도문이 생각납니다. “행복하여라!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기도문입니다. 이 말씀은 신앙생활의 핵심을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구 사목국에 있을 때입니다. 예전에는 사목국만 있었는데 교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목국에도 여러 부서가 생겼습니다. ‘행정실, 교육 담당, 가정 사목, 직장 사목, 복음화 연구실, 선교 전례, 레지오, 일반 병원 사목’으로 부서가 나누어졌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교육 담당을 맡았습니다. 사목을 크게 정의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게 3가지를 맡겨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병자를 고쳐 주는 것, 마귀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신부님들은 본당 사목하다가 와서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저도 비슷했습니다. 국장 신부님은 그런 현실을 아시고, 몇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각 부서가 가지는 고유한 사명을 찾도록 하였습니다. 각 부서의 역할을 우리 몸의 여러 기능을 통해서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자전거의 여러 기능을 통해서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신부님들은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부서의 사명은 무엇인지 조금씩 파악하였습니다. 부서의 역할과 사명을 분명히 파악한 신부님은 훨씬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은 부서는 ‘일반 병원 사목부’였습니다. 신부님은 가톨릭 성모 병원에만 있는 ‘원목 실과 원목 사제’를 일반 병원에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사명을 가지고 신부님은 병원마다 찾아다니면서 ‘원목 실’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였고, 신부님을 찾아다니면서 ‘원목 사제’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신부님은 해외의 병원들도 방문하면서 ‘원목 실’의 기능을 발전시켰습니다. 직접 임상 상담 프로그램을 배웠고, 자원봉사자들이 임상 상담을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가톨릭 회관에 있는 사무실을 얻어서 교육실로 만들었습니다. 임상 상담 교육이 있는 날 이외에는 다른 부서가 교육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대신에 다른 부서는 교육실의 비품을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부서도 교육실의 비품으로 텔레비전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의 열정, 신부님의 기획력, 신부님의 확신은 일반 병원 사목부를 발전시켰고, 서울에 있는 많은 병원에 ‘원목 실’을 만들었습니다. 원목 실을 통해서 많은 교우가 위로받았고, 병원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제 성화의 날’에 사목 체험을 발표하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교구 사목국의 교육 담당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의 주된 업무는 구역장, 반장을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소공동체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역장, 반장을 위한 피정과 월례 연수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월 발행되는 구역장, 반장을 위한 ‘길잡이’를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남, 여 총구역장 회의를 주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크게 3가지를 새롭게 했습니다. 1월의 월례 연수에는 주교님들이 미사를 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3분의 주교님이 18개 지구를 다니시면서 미사를 해 주었습니다. 구역장, 반장님이 주교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니 좋아하였고, 주교님들도 현장에서 미사를 함께 하시니 좋아하였습니다. 12월의 월례 연수에는 수고하신 구역장, 반장님을 위해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초대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가수를 초대해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남성 구역 봉사자를 위한 하루 피정도 만들었습니다. 강북은 동성 고등학교에서, 강남은 서초 구민회관에서 하였습니다. 형제님들이 좋아했습니다. 총구역장 회의를 명동에서 하다가, 각 지구로 찾아가서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직업도 ‘금수저’는 아니었습니다. 어부였고, 세리였고, 열심 당원이었습니다. ‘흙수저’가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스승을 팔아넘겼습니다. 베드로는 3번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의 표상이지만 그 길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다윗도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가 있으오리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더욱 주님을 따르라 하시나이다.”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부족함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완벽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여전히 나약함 때문에 좌절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제 주님께서 가신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나약함을 믿음으로 극복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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