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일 (일)
(백)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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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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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6:27 ㅣ No.189415

김건태 신부님_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말씀

 

[말씀]

 

■ 제1독서(사도 6,1-7)

 

사도들의 공동체 시대에 이미 교회 분열의 조짐이, 나아가 갈등과 충돌이 이곳저곳에서 쉽게 감지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의 출신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천주 성령의 활동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사도들은 공동체 조직을 재편함으로써 성령의 활동, 곧 세속적인 분열의 조짐을 차단하는 하느님의 일치 능력이 드러나도록 힘씁니다.

 

■ 제2독서(1베드 2,4-9)

 

예수님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리라 예고하시며, 당신이 바로 참된 성전임을 역설하신 바 있습니다. 영적인 이 성전은, 새 성전의 모퉁잇돌인 예수님을 기초로 세워진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지속됩니다. 이 공동체는 유다교가 현실화시킬 수 없었던 것을 완성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 신앙에 기초한 그리스도교는 참된 제사, 생명과 빛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제사를 올리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 복음(요한 14,1-12)

 

토마스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던지는 질문을 보면, 그들에게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안내자에 불과하실 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당신은 하느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분의 모든 삶은 성부와 나누시는 사랑의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성부와 나누시는 이러한 친교 안으로 이끌어가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곁을 떠나심으로, 당신의 행적들을 통하여 드러나기 시작한 신성(神聖), 곧 성부와 하나이심을 제자들이 믿어 고백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새김]

 

하느님은 누구신가?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사람들이 끊임없이 던져온 질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그분을 향해 자신들의 기다림과 두려움을 피력해 왔을 뿐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서로 대립하고 서로를 파멸시킴으로써, 받들어 섬기고 있다고 소리 높이면서도 바로 그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위에 군림하려 얼마나 애써 왔는지 모릅니다. 하느님, 그분은 우리가 제멋대로 마음에 그리거나 담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낱 우상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 말씀과 행적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상 죽음에 부치시고 사흘 만에 부활시킴으로써 당신 뜻이 오로지 세상과 인간 구원에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신 분으로 알려주십니다. 이 뜻을 이제는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로 택하신 사도들,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워진 교회의 구성원들인 우리가 받들어 실천에 옮겨나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인간적인 한계를 절감하고 있고 때로는 죄로 얼룩져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은 성령을 통하여 이 교회 안에서 당신을 끊임없이 계시하시며 구원계획을 펼쳐나가실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 다시 말해 우리의 사명은 하느님과 형제들과의 일치 속에 먼저 사랑을 철저하게 살아 이웃을 사랑으로 초대하고 사랑을 실천해나가는 일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기초이며 부활은 사랑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외아드님을 십자가상 희생 제물로 허락하시고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게 하신 그 모든 역사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철저한 사랑 실천으로 부활 신앙을 드러내고 전파하는, 부활 신앙인의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하느님께 순종하자!'

 

오늘 복음(요한14,1-12)의 제목은 '아버지께 가는 길'입니다.

 

오늘은 5월 성모성월의 첫 주일입니다. 교회는 '5월의 첫 주일'을 '생명 주일'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생명 주일의 의미'는 말 그대로 생명을 지켜내자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문화를 멀리하고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서의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 생명이 경시되는 살인행위들, 전쟁과 폭력, 인간 생명을 경시하는 악법의 제정, 그리고 약자들에 대한 무관심, 더 나아가 말 못하는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학대와 그리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와 같은 세상의 가치들이 '죽음의 문화'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자는 데에 생명 주일의 참의미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이신 곽진상 제르마노 주교님께서 제16회 생명 주일을 맞이하여 담화를 발표하셨는데, 담화의 성구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5,29)입니다.

 

이 담화가,

'하느님의 완전한 드러남(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 있는 돌'이시며,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값진 머릿돌'이 되신 분,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향해 있어야, 죽음의 문화를 걷어내고 생명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는 외침의 담화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 온전하게 향해 있을 때, 우리는 '새 생명이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 성령께서 나를 움직이게 하시고, 생명의 문화로 이끌어 가십니다.

 

사람에게 순종하지 말고, 하느님께 순종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 말씀의 초대

 

“너희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절) 예수님은 이제 곧 수난과 죽음을 맞으실 것을 아시며 제자들에게 마지막 위로를 건네신다. 제자들은 두려워했고,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아버지께 가는 길”이라고 밝히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6절)

 

2. 그리스도: 아버지께 이르는 길

 

토마스가 물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5절) 그의 질문은 우리 신앙의 질문과도 같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찾으려 하지만, 정작 그 길이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예수님은 단순히 길을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곧 길이신 분이다. 그분이 진리이시며, 곧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길이시다. 또한 그분이 생명이시며, 죄와 죽음 속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길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다. 그분 안에서만이 죄의 저주로 죽은 우리가 다시 살아난다.”(I. De La Potterie, La verité dans St. Jean, vol. II, Roma 1977, p. 1009) ‘진리’는 단순한 교리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드러나는 계시의 선물이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이나 논리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 안에서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3.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필립보가 말한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8절) 이 말은 인간의 영원한 갈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신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9절) 예수님을 본다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아버지의 현존을 인식하는 것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아버지를 안다.”(Adversus Haereses IV,6,6)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덧붙인다. “길을 걷지 않고 목적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자는 미혹된 자이다. 그리스도가 길이시다. 그 길 위에서 진리를 배우고 생명을 얻는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34,9)

 

4. 살아 있는 돌로서의 교회

 

제1독서(사도 6,1-7)에서는 일곱 부제를 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교회가 단순한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 봉사와 사랑 안에서 자라나는 살아 있는 공동체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제2독서(1베드 2,4-9)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이루십시오.”(1베드 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버림받은 돌이셨지만, 머릿돌이 되셨다. 우리 각자는 그 머릿돌 위에 자신을 쌓아 올리며, 하느님께 드리는 신령한 제물이 되어 간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께 결합하지 않은 자는 아무리 돌처럼 단단해 보여도 교회의 집에 속하지 않는다. 그분 안에 있는 자만이 생명의 집 일부가 된다.”(Homiliae in Epistolam I ad Petrum, 5)

 

5. 신앙인의 하루: 신령한 제물로 사는 삶

 

우리는 매일 아침 하루를 선물로 받는다. 그 하루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하신 구원의 여정이다. 그분은 우리가 그 하루를 단순히 ‘지나가는 시간’으로 살지 않고, 신령한 제사로 바치길 바라신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 2,5) 이 사제직은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가 부여받은 왕다운 사제직이다. 우리는 봉사와 사랑, 희생을 통해 자신의 하루를 제물로 드리는 사제적 존재이다. 예수님은 단지 길을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길 자체이시다. 진리와 생명이신 분이기에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되신다. 그분과 믿음으로 결합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는 살아 있는 제물이 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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