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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0일 (일)
(백) 부활 제6주일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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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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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5-09 ㅣ No.189516

조욱현 신부님_내개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18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미움과 박해가 제자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그분을 따르기 때문에 오는 것임을 알려 주신다“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19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미워하는 것이니누구든지 이 세상의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그는 하느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In Ioannem Evangelium, Tract. 87 의역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세상과 충돌하게 된다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세상에서 하느님의 빛과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20그리스도의 제자는 스승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다스승이 고난과 십자가를 겪으셨다면제자 또한 그 길을 피할 수 없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가르친다“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셔야 했다면제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그분을 모욕과 욕설로 찢어 놓았다면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닥친다고 해서 놀라워할 것이 무엇이겠는가?(Homilia in Ioannem 77 요약박해는 오히려 제자가 스승을 닮았다는 확실한 표징이다.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21이는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이유가 단순히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이라는 뜻이다성 치프리아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세상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의 원수이기 때문이다.(Epist. 81 의역그러므로 박해는 실패가 아니라오히려 그리스도의 제자직의 증거이다교회도 박해를 복음적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가르친다.

 

교리서는 “그리스도의 온 생애는 십자가의 신비를 드러낸다.(530항 의역또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순교는 그 증언의 최고 형태이다.(2473항 의역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박해는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라주님과 일치하는 기회이며복음을 증거하는 최상의 자리이다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당신께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박해는 피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오히려 주님을 닮는 은총의 길이다우리는 세상의 박해와 미움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그리스도의 벗으로서 담대히 증거하는 삶을 다짐하자“이 싸움에서 이기는 이가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묵시 3,21 참조)이라는 약속을 믿으며끝까지 충실히 주님의 길을 걸어가자.

 

김건태 신부님_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


신앙인으로 살면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삼아 주신 예수님의 말씀이 때로는 분열을 초래할 때가 참 많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한 집안이 분열되어 서로 맞서리라는 예고 말씀(마태 10,34-36; 루카 12,51-53 참조) 앞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 어둠과 불의와 거짓을 즐기는 세상을 귀찮고 불편하게 만드는 삶임을 받아들이거나 각오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한편, 가톨릭 신자로 살면서도 신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스스로 개탄하거나 좌절 또는 무력감에 젖어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가톨릭 신자임에도 왜 사회 또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할까? 우리 입에 달고 다니는 빛과 소금의 역할 수행에 왜 그렇게 굼뜨거나 궁색하기만 할까? 빛과 진리를 따르는 모범적인 생활은 아니더라도, 때로 불의와 거짓과 불화를 마다하지 않는, 비신자들만도 못한 행동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처럼 초라한 모습 가운데 상당 부분이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 곧 교회의 정신에 따른 사고 방식이 아니라,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사고 방식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는데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분명히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을, 하느님의 말씀을 잣대로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박해’를 각오하기보다는, 그래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임을 드러내기보다는, 신앙인으로서의 사명 의식을 저버리거나 때로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돌아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삶, 아니면 어느 틈엔가 나도 편승하고 있는 삶을 받아들여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반대를 위한 반대 입장에만 서서, 무조건 세상일에 간섭하여 비난 또는 단죄만을 일삼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인권유린이나 생명 경시, 자연 파괴, 사회 불의와 같은 문제에서 입을 다물고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면, 더는 하느님, 성경, 교회 정신 등과 같은 개념을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은 아무런 의미와 가치가 없는, 그야말로 세상의 미움이나 박해를 두려워하는 비굴한 행태, 하느님을 모독하고 성경을 곡해하고 교회 정신을 왜곡하는 수치스러운 작태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은 분명 두 발을 세상에 딛고 살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한,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몸은 세상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늘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이 땅에 구현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희생하며 힘써야 할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고 그분의 뜻을 전하며 그 뜻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미움이 밀려오고 박해가 들이닥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님을, 우리 신앙공동체가 세상에 속한 공동체가 아님을 보증하는 증표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활 신앙인들은 부활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람들, 미움과 박해, 수난과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을 희망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이 세상이 하느님의 뜻대로 구원을 향한 여정에 함께하도록 기도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을 하느님의 뜻대로 돌아가게 하는 데 보탬이 되는 하루, 부활신앙을 높이 기리며 힘차게 선포하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15,18)


'우리보다 먼저이셨던 예수님!'


오늘 복음(요한15,18-21)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요한15,18-19.21ㄴ)


본당사목을 하다가 우리농이라는 특수사목으로 소임 이동된 후 멈추어진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필사'입니다. 세 번째 신구약성경 필사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2.16부터 멈추어졌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9장 57절에서 멈추어졌습니다. 또 하나는 '산행'입니다. 그래도 종종(자주) 산행을 했는데, 작년 사순시기 중간부터 멈추어졌습니다. 당시 다리가 좀 아파서 그랬는데.


요즘 휴가 중입니다.

엇그제 목요일부터 쉼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다음 주까지입니다.

잠시 멈추고 싶었습니다. 쉼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던 산행을 마음껏 하고 싶었습니다.

매일 가벼운 산행이나 산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성경필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이셨던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너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너를 위해 '열정적(땀)'이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완전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너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웃 사랑에 열정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부활(다시 시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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