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1일 (월)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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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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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5-10 ㅣ No.189533

이병우 신부님-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14,15) 
 
'사도들의 뒤를 따라가자!' 
 
오늘 복음(요한14,15-21)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14,15-17ㄱ) 
 
"내 계명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14,21) 
 
어제 오전에 함안 대산에 있는 '대산성지성당 본당설립 50주년 기념미사'에 다녀왔습니다. 대산성지는 '순교복자 제109위이신 구한선타대오'를 모시고 있는 성지입니다. 
 
교구장이신 이성효 리노 주교님께서 미사 때 주님의 기도의 앞서 성 아우구스티노가 한 말을 언급하시면서 주님의 기도를 힘차게 노래하자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죽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히 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영원히 잘 살기 위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것도 기쁘게. 영원한 기쁨을 희망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호자, 곧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받고 체험한 제자들은 완전 대변신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도들의 뒤를 따라갑시다!

 

조욱현 신부님_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1. 사랑으로 시작되고 사랑으로 끝나는 복음
오늘 복음은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15절)라고 말씀하시며, 참된 사랑은 말이 아니라, 순명과 행위 안에서 증명되는 것임을 가르치신다. 사랑하는 이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며,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 안에는 곧 성부와 성자의 현존이 드러난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21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이 없는 계명 준수는 무익하고, 계명이 없는 사랑은 진실하지 않다. 사랑과 계명은 분리될 수 없는 쌍둥이와 같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65,1)라고 말한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인식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행동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그분을 더 깊이 아는 사람은 더 많이 사랑하며, 그분의 계명을 충실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2.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리라.”(요한 14,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떠남으로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의 약속을 주신다. “다른 보호자”(Paracletos)란 ‘곁에서 위로하고, 변호하며, 돕는 이’를 뜻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보호자이셨듯이, 이제 성령께서 그 역할을 이어가신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17절) ‘보다’(theorèin)라는 단어는 단순히 시각적 행위를 넘어,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는 통찰을 뜻한다. 세상은 이 눈을 갖지 못한다. 빛이 비추지만, 어둠은 그 빛을 깨닫지 못하는 것(요한 1,5)과 같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성령께서는 교회의 숨결이시다. 그분이 없다면 교회는 움직일 수 없다. 그분이 임하실 때, 모든 것은 다시 생명을 얻는다.”(In Ioannem Homilia 77,3)라고 하였다. 성령은 단순한 위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협조자이시며,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3.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요한 14,18)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신다. 그분의 떠남은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현존의 시작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다.”(19절)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신앙인의 마음 안에 현존하시며, 그 현존은 성령을 통해 지속된다.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삶 안에서 반복되는 현재의 체험이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20절) 
 
성 치릴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죽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무신다면, 우리는 부활의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In Ioannem Commentarius X, 2)라고 말한다. 
 
4. “너희 마음 안에 머무는 희망을 말할 준비를 하라.”(1베드 3,15)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한 사람은 자연스레 희망의 증인이 된다. 베드로 사도는 박해받는 교회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부활의 힘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용기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1베드 3,18) 이 말씀은 파스카의 신비를 압축하고 있다. 성령은 우리의 약함과 죽음 속에서도 부활을 일으키시는 능력이다.(로마 8,11 참조) 성 요한 다마스코는 “희망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닻이다. 풍랑이 몰아쳐도 그 닻이 하늘에 닿아 있기 때문에 배는 결코 전복되지 않는다.”(De Fide Orthodoxa II, 27)라고 하였다. 
 
5. 우리의 부활 체험: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살아가기

부활의 신비는 역사 속 사건이면서도, 우리의 일상 안에서 계속 실현되는 ‘지속적 창조’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세상의 미움과 폭력, 부정 속에서도 사랑의 힘은 여전히 새 생명을 낳는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봉사와 사랑의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성령의 숨결 안에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삶이다.

 

김건태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성령의 인도로 하나 되는 공동체


[말씀]


■ 제1독서(사도 8,5-8.14-17)


사도행전은, 성령의 선물은 보편적인 공동체의 탄생으로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교회는 ‘한꺼번에’가 아니라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모든 사람, 곧 세상 방방곡곡에 전파됩니다. 이는 유다인들이 경멸했던 사마리아인들의 회개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도 입증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에 관해서 극히 부분적인 계시만을 받아들였으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분에 관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변화됩니다.


■ 제2독서(1베드 3,15-18)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적대자들의 끈질긴 중상과 박해의 희생제물이 됩니다. 이러한 힘겨운 상황 속에서 베드로는 신앙인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 특히 신앙을 증거하기를 포기하지 말 것을 독려합니다. 신앙인들은 적대자들이라 할지라도 우선 존경심으로 대하는 가운데 부드러운 마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를 갖출 때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수난을 받으셨을 때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복음(요한 14,15-21)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모범을 따르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분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역동적인 힘에 사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선물은 세속적인 인간의 삶을 사로잡아 하느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진정한 의미를 밝혀주신 참된 삶에 참여하도록 이끕니다. 닫힌 세상에 갇혀 있던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삶입니다.


[새김]


사랑하던 사람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가 남긴 빈자리를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이 되게 만든 것, 곧 그 사람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그제야 살피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진면모를 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바로 예수님이,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주님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들려주신 말씀과 보여주신 행적, 끝내 구원성취를 위한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뒤늦게 파악하고서, 그분의 뒤를 이어 구원사업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힘을 그 안에서 찾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 제자들을 도와 구원사업을 펼쳐나가는 데 필요한 힘을 ‘영’이라 부르십니다. 이 영은 성자와 성부 사이 사랑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힘입니다. 성령으로 이끌린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어떤 위대한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바로 그분의 역동적인 힘, 곧 사랑의 힘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홀로였다는 닫힌 마음을 열어 젖혀버리고, 공동체를 향한 친교의 관계로 접어듭니다. 지금까지 의심 또는 초조감 속에 갇혀 있던 관계를 털어버리고, 자유의 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사람, 사람들 사이가 하나 되는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모습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신앙공동체가 하나 됨을 우선시하는 가운데, 일치를 방해하거나 더디게 하는 모든 요소가 있다면 이를 제거하는 데 온 힘을 모으는 일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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