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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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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에서 ‘시니어 지킴이’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신학과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 말씀은 우리를 영적으로 이끌어줍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중에도 인류와 역사 앞에 큰 울림을 주었던 말씀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나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게 된다.’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길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삶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진리를 찾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서양철학에서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찾았습니다. 정치가에게 정의를 물었습니다. 군인에게 힘을 물었습니다. 예술가에게 아름다움을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물었지만, 참다운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안다고 하지만 사실 모르는 것이 많다. 소크라테스는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크라테스에게 진리는 어쩌면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것인지 모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전하는 것을 막으려는 재판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예수님처럼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죽음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진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리가 있다면 스승이 억울하게 죽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양철학 합리론의 기본이 되는 ‘이데아론’을 이야기합니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진리’를 망각한다고 합니다. 마치 동굴에서는 그림자만 볼 수 있는 것처럼, 동굴을 나와야 비로소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육체를 벗어나야만 비로소 진리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플라톤에서 진리는 ‘개념’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진리는 ‘관계’입니다. 화가의 마음에 있는 작품이 그림을 통해서 드러나듯이, 진리는 진리인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소크라테스가 했던 것처럼 탐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플라톤이 했던 것처럼 개념으로 정의를 내려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유혹이 있어서 그렇고, 나약해서 그렇고,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선을 알고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나를 악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진리인 예수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굶주린 백성을 측은하게 보셔서 빵을 나누어 주는 길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모범을 보여 주시는 길입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라고 하셨던 겸손의 길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던 지혜의 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듣고 몇몇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만나면, 우리는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환한 미소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리면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 함께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가겠다고 신호를 보내는 사람에게 차선을 양보하면 그 사람은 지금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볼 수도 있습니다. 진리는 이렇게 관계 안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함께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 위로의 성령, 굳셈의 성령, 지식의 성령, 지혜의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따뜻함과 온유함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전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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