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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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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성령의 업적
오늘 예수님은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하시는 말씀으로,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찬 제자들을 안쓰럽게 생각하시며 운을 떼십니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니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여쭐 엄두도 못 내는 제자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제자들을 봅니다. 사실, 이 떠나가심의 의미를 진지하게 여쭐 수 있게 될 때야 비로소 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셔야, 곧 십자가 위에서 영광스럽게 되셔야, 다시 오실 수 있고,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과 함께하실 수 있으며, 또 그래야 제자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믿음이 부족하고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하고 약속하시며, 약속하신 그 성령이 이루실 일을 밝혀주십니다: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다실 말해서 성령은 제자들을 근심에 싸이게 한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먼저, 성령은 죄의 의미를 밝혀주실 것입니다. 죄는 율법을 어김을 말하기에 앞서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행위,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 수용을 거부하는 행위, 따라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비록 우리가 신법과 자연법 영역에서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죄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가 “율법은 쓸모가 없습니다. 믿음만이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고 달리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 성령은 의로움의 의미를 일깨워주실 것입니다. 여기서도 의로움은 문자 그대로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의 다른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성부와 가까이 계심으로써, 곧 아버지께 돌아가심으로써 그분의 거룩함을 공유하시기에 의로우신 분입니다. 인간의 정의, 곧 세속적인 정의는 하느님의 생명을 공유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끝으로, 성령은 심판의 의미를 분명히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은, 곧 이미 선언된 현재의 심판입니다. 심판은 우리의 거부로 말미암아 이미 펼쳐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빛을 향하고 있느냐 아니면 어둠을 추구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미 결판이 난 일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미래에 주어질 유일한 선언이 아니라, 지상 생활 동안 매 순간 반복될 선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시며 약속하신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가 죄와 의로움과 심판의 의미를 터득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에 관한 모든 증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열쇠인 거룩함을 추구하며, 어둠이 아니라 빛을 향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염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고 거룩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는 가운데, 주님의 심판을 영원한 생명을 맞이하기 위한 예비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넉넉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협조자이신 성령께서 오시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나야만 성령이 오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7절) 제자들은 주님의 떠나심 때문에 슬퍼하지만, 예수님은 이 떠나심이 곧 하느님의 영광이며,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그분의 현존을 새롭게 누리게 되는 길임을 드러내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주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만일 그분이 떠나지 않으셨다면, 성령께서 그들에게 오시지 않으셨을 것이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XCIV, 요한 16,7 의역) 즉,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현존의 방식을 여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대신, 성령 안에서 모든 시대, 모든 이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오셔서 세상에 세 가지를 드러내실 것이라 하신다.(8-11절)
★우선 죄에 대하여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9절)→주님을 거부하는 것이 곧 죄의 본질임을 드러내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가장 큰 죄는 불신이다.”(In Ioannem Homiliae LXXVIII, 요한 16,9 의역) ★의로움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사실은 그분의 거룩함과 의로움이 드러났음을 의미한다. 세상은 예수님을 율법을 어기는 죄인이라 단죄했지만, 아버지께서 그분을 부활로 영광스럽게 하심으로써 참된 의로움이 세상에 드러났다. ★심판에 대하여는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11절)→ 사탄은 이미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패배했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께서는 용의 머리를 부수시고, 죽음을 죽음에게 넘기셨다.”(Adversus Haereses V,21, 히브 2,14 의역)
예수님은 성령을 Paraclitus, 즉 보호자·협조자라 부르셨다. 이 말에는 “위로자”, “대변자”, “협력자”의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성령께서는 빛을 주시고, 힘을 북돋우시며,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De Spiritu Sancto XVI 의역) 따라서 성령은 단순히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는 분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느님 뜻 안에서 살도록 협조해 주시는 인도자이시다.
예수님의 승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고, 주님을 따르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예수님은 떠나셨지만,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셨다. 성령을 협조자로 보내 주셔서, 우리가 참된 기쁨과 빛 속에 살도록 하셨다. 오늘 하루도 우리 마음을 성령께 열어, 그분의 위로와 인도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령은 협조자이시니, 위로자요 변호자요 신자들의 인도자이시다.”
이병우 신부님_"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15,26ㄴ)
'나의 다락방!'
오늘 복음(요한15,26-16,4ㄱ)은 지난 토요일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26-16,1)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원형이십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구원의 길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몸소 세례를 받으셨고,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으며, 사랑의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침내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보호자, 곧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받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길을 그대로 걸어갔습니다. 박해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이제는 그들도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기쁘게 복음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진정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 생겨 났고,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 밖으로 퍼져 나가, 예루살렘을 넘어 아시아로, 유럽으로, 마침내는 온 세상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위로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사도1,12-14: 2,1-3 참조) 이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성령을 받도록 합시다! 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 '나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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