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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 무엇이 돼지 대신 그리스도를 선택하게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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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는 참으로 씁쓸하고도 기막힌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에 이르시자, 무덤에서 마귀 들린 사람 둘이 튀어나와 길을 막습니다. 그 마귀들은 사납기 그지없어 아무도 그 길로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그들을 돼지 떼 속으로 몰아넣으시고, 그러자 돼지 떼가 비탈을 내리달려 호수에 빠져 몰살합니다. 자, 여러분이 그 고장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온 마을이 두려워하던 그 사나운 이웃 둘이 멀쩡한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마땅히 잔치를 벌이고 예수님을 은인으로 모셔야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온 고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분을 보고 나서, 자기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였다."(마태 8,34 참조) 우리는 이 대목을 읽으며 혀를 찹니다. "어리석은 속물들. 사람 둘이 살아났는데, 하느님보다 돼지가 더 중했단 말인가." 그러면서 은근히 선민의식에 빠집니다. 나는 주일 미사도 꼬박꼬박 나오고 봉사도 하니, 저들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여깁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저는 바로 이 착각을 깨뜨리는 데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합시다. 가다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내쫓은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돼지가 본래 악해서가 아닙니다. 돼지는 그들의 생계 수단이었을 뿐, 그 자체로는 죄가 없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으면 가족의 생명도 지킬 수 없고 이웃도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 돼지가, 그 재물이 예수님을 내 삶에서 밀어내게 만드는 순간, 바로 그때 그것은 마귀 들린 것이 됩니다. 가다라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 곧 재물을 이미 섬기고 있었기에, 사람이 치유되는 하느님의 기적 앞에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돼지만 헤아렸던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은 내 것"이라며, 그 내 것이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무서운 진실이 이것입니다. 내 것이라 움켜쥔 그것에서 단 한 푼의 육적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할 때, 우리는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을 잃습니다. 영적인 이득을 챙길 것인가, 육적인 이득을 챙길 것인가. 우리는 매 순간 이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합니다. 사탄은 결코 뿔 달린 괴물로 나타나 "네 영혼을 내놓아라" 협박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수법은 훨씬 교묘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육적인 손해를 보게 하는 모든 것을 슬그머니 멀리하게 만듭니다. "성당 다니면 헌금 내야 하고, 시간 뺏기고, 봉사하느라 몸 축나잖아." 이렇게 속삭여, 영적인 이득을 위해 육적인 손해를 치러야 하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데리고 나옵니다. 그렇게 사탄은 사람을 조금씩 철저한 물질주의자로 만들어 갑니다. 손해 보지 않는 것을 가장 똑똑한 삶이라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탄의 가장 큰 승리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님을, 성경의 첫 장이 증언합니다. 에덴에서 사탄이 하와를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그는 "하느님을 배신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악과를 가리키며, 저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은 너의 손해라고 속삭였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 너희가 하느님처럼 된다."(창세 3,5 참조) 곧 "저 열매라는 육적 이득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손해다" 하고 꼬드긴 것입니다. 하와는 그 손해를 거부했습니다. 눈에 좋아 보이고 탐스러운 그 육적 이득을 차마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열매 하나를 손해 보지 않으려다, 그들은 하느님을 통째로 잃었습니다. 낙원을 잃고, 생명나무를 잃었습니다. 작은 육적 손해를 거부한 그 선택이, 가장 큰 영적 파멸을 불러온 것입니다. 가다라 사람들이 돼지를 지키려다 그분을 잃은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물질주의의 덫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겠습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곧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비교할 수 없이 값지다는 것, 그 영적인 보화를 얻기 위해서라면 육적인 손해쯤은 기꺼이 감수할 만하다는 것을 아는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혜를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참조) 보십시오. 그는 가진 것 전부를 손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뻐하며 그렇게 했습니다.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그 밭에 묻힌 보물이 자기 전 재산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값지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란, 무엇이 더 값진지를 알아 기쁘게 손해 볼 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귀한 지혜는 어디서 얻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보십시오. 그들은 길에서 만난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끝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먼 길을 걸으며 그분께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말씀을 풀이해 주시는 것을 오래도록 들었습니다. 마침내 집에 이르러 그분께서 빵을 떼시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서로 말합니다. "길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또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참조) 보십시오. 그들이 마침내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맞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그분께 성경 말씀의 해설을 들으며 마음이 데워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깊이 듣고 새기는 일, 곧 거룩한 독서가 영적인 눈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혜를 얻는 가장 좋은 길은 좋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를 보는 눈을 길러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습니까. 얼마 전 한 자매님이 아이가 수학을 못해 학원에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책을 많이 읽히시라 말씀드렸습니다. 학원에 보내 봐야 그저 보통 사람 하나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 참 인생의 가치를 깨달은 아이는, 훗날 수학이 필요해지면 스스로 깊이 파고듭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를 아는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아갑니다. 성당의 신앙 교육도 꼭 이와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고등학교만 들어가면 거의 성당에 나오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중학교 때까지 책을 읽히지 않아, 그 참된 가치가 온통 현세에만 묶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치고 독서를 강조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책은 사람을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이 빠져 있는 쇼츠와 짧은 동영상은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보는 이의 사고를 강요하여 점점 더 현세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한쪽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는 눈을 길러 주고, 다른 한쪽은 눈에 보이는 자극에만 매이게 합니다. 그러니 아이 때부터 무조건 책을 읽혀야 합니다. 그래야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가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돼지 대신 그리스도를 택할 줄 아는 사람, 참된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제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저 또한 한 권의 책으로 이 지혜를 얻었습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으며, 육적인 행복이 아니라 영적인 행복이야말로 참 행복임을,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많은 것을 손해 보아도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제가 되기로 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많은 것을 포기한 손해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참된 행복을 찾았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의 그 기쁨을, 저는 압니다. 오늘 우리 앞에 두 길이 놓여 있습니다. 돼지를 지키며 그분을 떠나보내는 가다라의 길과, 가진 것을 기쁘게 내려놓고 보물을 얻는 지혜의 길입니다. 이것은 동영상을 선택하느냐, 책을 선택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영적인 것이 더 값지다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우리 자신도, 우리 아이들도 좋은 책을 가까이하여, 그 지혜로 무엇이 참으로 값진지를 보는 눈을 기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에게 손해가 올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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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수요일] |
2026-07-01 | 박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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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1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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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
2026-07-01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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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 마귀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오직 주님에 대한 굳센 믿음! |
2026-07-01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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