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7일 (금)
(녹)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성 도미니꼬 사제 기념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2:54 ㅣ No.191035

다크(Dark) 심리학을 읽었습니다. 제목만 보면 조금 어둡고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선한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토끼는 그저 약하기에 도망가야 하고, 먹히는 존재가 된다고 합니다. 약함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악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약함, 불의를 보면서도 침묵하는 약함, 두려움 때문에 순종만 하는 약함은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악을 이기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자기 욕심을 위해 쓰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힘이 없어서 선한 것이 아니라,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사랑과 진리 안에서 다스리는 사람이 참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성서에도 순종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는 반항과 도전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있었고, 카인의 반항이 있었고,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배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반항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에서 나온 반항이었습니다. 카인의 반항은 시기와 분노에서 나온 반항이었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실망과 욕망에서 나온 반항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배신은 두려움에서 나온 반항이었습니다. 이런 반항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자신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도전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존의 질서와 제도를 그대로 따르지만은 않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셨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실패와 저주의 상징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구원과 사랑의 표징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남을 이기기 위한 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섬기는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상처 주는 힘이 아니라 살리는 힘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병자를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냈고, 예수님의 말씀도 들었고, 예수님의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 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은 막연한 낙관이 아닙니다. “다 잘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 안에서 악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입니다. 믿음은 가장 강한 마음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말씀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 안의 두려움이라는 산, 분노라는 산, 욕망이라는 산, 절망이라는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고쳐줍니다. 두려움 때문에 문을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이 이제는 광장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들이 갑자기 세상의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갑자기 강한 군대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두려움을 이겼습니다. 믿음이 죄책감을 이겼습니다. 믿음이 세상의 협박을 이겼습니다. 믿음이 그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바쿡 예언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께서는 눈이 맑으시어 악을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잘못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시면서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바라보고만 계십니까?” 우리도 때로 그렇게 묻습니다. 왜 악한 사람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입니까? 왜 의로운 사람이 고통받습니까? 왜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믿음은 하느님의 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다리는 힘입니다. 믿음은 악이 강해 보일 때에도 선을 포기하지 않는 힘입니다. 믿음은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성실하게 오늘의 십자가를 지는 힘입니다. 우리는 약해서 착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믿음 때문에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믿기 때문에 세상의 악과 불의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겸손을 만나면 사랑이 피어납니다. 믿음이 희생을 만나면 희망이 열매 맺습니다. 믿음이 용기를 얻으면 산도 옮겨집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청하십니다. 그 작은 믿음이 우리 안의 두려움을 옮기고, 우리 가정의 상처를 옮기고, 세상의 어둠을 옮길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