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Re:함승수 신 부님 [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
|---|
|
What struck me most is that the “log in our eye” is not only a personal flaw. It can also become a collective blindness within a faith community.
The most dangerous thing is not simply failing to see, but being convinced that we see clearly—that we know God’s will—while our own pride, authority, traditions, fear, or desire to protect the institution may actually be blocking God’s will from our sight.
Like Saul, we may sincerely believe we are serving God while unknowingly moving in a direction far from Him.
That is why every Christian—and every Christian community—must continually ask: “Is what I see truly God’s will, or is something in me preventing me from seeing it?” May God remove the “log” from our eyes, both individually and as a community, so that we may once again see with the eyes of Christ.
이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비단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 그리고 우리 평신도 역시 얼마든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교회의 직분을 맡았다고 해서, 성경과 교리를 많이 안다고 해서 영적인 눈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이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사울도 하느님을 버리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확신이 그를 예수님과 그분의 사람들을 박해하는 길로 이끌었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눈의 들보’는 단순히 개인의 작은 허물이나 부족함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내가 옳다는 확신, 내가 하느님의 뜻을 안다는 생각, 내가 속한 공동체가 틀릴 리 없다는 믿음, 권위와 전통과 관습을 지키려는 마음, 체면과 조직을 보호하려는 마음 자체가 하느님의 뜻을 가리는 커다란 들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 사람의 영적인 맹목으로 끝나지 않을 때입니다. 한 사람이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도 자신의 판단을 돌아보지 않게 되면 어느 순간 공동체 전체가 보아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공동체가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장 위험한 말은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하느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자존심과 두려움과 권위와 익숙한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려면 누군가의 눈에 있는 티를 찾아내는 사람보다 먼저, 자신의 눈에 들보가 박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하듯이, 공동체도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정말 복음의 길인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자비와 진실의 길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판단과 관습과 권위가 하느님의 뜻보다 앞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가리는 들보가 개인의 눈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그 들보가 공동체의 눈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눈이 가려지면, 그 공동체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보지 못한 채 점점 하느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라, ‘내가 보고 있다고 확신하는 그것이 정말 하느님의 뜻인가?’라는 더 두려운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오로가 눈이 멀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보기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내가 너무나 확실하게 보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가 다시 그리스도의 마음과 복음의 길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함께 성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눈에서,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눈에서 하느님의 뜻을 가리고 있는 들보가 하나씩 치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191827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
2026-09-11 | 박양석 |
| 191825 |
함승수 신 부님 [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
2026-09-11 | 박영희 |
| 191826 | Re:함승수 신 부님 [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
2026-09-11 | Mark Choi |
| 191824 |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2026-09-11 | 최원석 |
| 191823 |
전삼용 신부님_리더보다 스승 |
2026-09-11 | 최원석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