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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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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할아버지 신부님께 가서 고백성사를 보는 날입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7월달에 카톡으로 신부님 수도회에 행사가 있다고 해서 얼떨 결에 참석을 했는데 당시 원장 신부님이 새로 오쇼서 수도회 살림이 좀 마이너스 라고 하면서 신부님이 후원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것의 첫 시발점이 된 것이 7월달 opening 이었고 어제가 첫 정기 모임이었습니다, 정기모임 후 하이라이트는 점심을 먹고 나서 부터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수도회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것을 모토로 하여서 움직이는 수도회입니다. 저가 매일 배달하는 수도회 중에 울레바또르 수도회와 시조는 같은데 영성에서 좀 다른 곳입니다. 어제 점심 먹고 배밭으로 초대를 받고 그 곳에 배를 수거한 것은 아니고 배를 수거하고 나서 잔 쓰레기 청소를 한것입니다. 그 순간 당황하였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신부님에게 고백성사를 받고 그 원장 신부님 강의 듣고 식사 후 해산으로 알고 정장차림으로 간것입니다. 구두도 같이 신고 갔습니다. 그런 복장으로 쓰레기 청소를 한것입니다. 얼굴이 후끈 후끈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해요 복장 망가지고 신발도 망가졌지만 그러나 수도회가 산에 있고 가을 하늘이 맑고 고운데다가 공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청소가 끝나고 신부님이 주신 배를 두개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맥주가 아주 명품입니다. 신부님이 따라주시는 맥주를 받아 먹어 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운것은 신부님이 처음 공지 하실때 쓰레기 청소할 것이니 옷을 자유 복장과 신발도 준비하여 오세요 라는 공지가 없었다는 것이 좀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준비 하여서 갔다면 하는 더 좋았을 것입니다. 옷과 몸을 사리지 않고 청소 했을 것을 그렇지 않고 양복차림에 구두를 신고 갔으니 일하는 저도 그렇고 보시는 신부님과 수사님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준비해서 갔다면 미안한 마음도 않들고 더 열심히 해서 같이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것을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제 신부님 수도회에서 준비라는 것이 오늘 복음에서의 하을나라 초대에 응하는 마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각자를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초대장은 모두 받습니다. 응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느 농장의 주인이 잔치를 열고 처대장을 주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다 이런 핑게 저런 핑게를 들이대며 다 오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초대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마음에 교만이 있고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초대를 받은 사람은 아마도 주인의 소작인들 같습니다. 내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소작인들이 주인에게 반응하는 것에 주인이 화가 나서 소작인들을 죽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다시 길거리로 사람들을 보내서 아무나 초대를 합니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참여를 합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고 오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주인은 그 예복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을 밖으로 추방합니다. 어제 수도회에서 쓰레기 청소를 하는 것을 준비 못한 제 모습과 같습니다. 다행히 어제 수도회에서는 추방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첫 부분에서 초대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은 사람은 소작인인데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사람입니다. 주인정신으로 일하는 것은 중요한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주님이 부르시면 삶을 마감하고 하느님 앞에 서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 유한한 삶을 항상 인식하지 않고 나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흥청 망청 자유 분방하게 살아간다면 복음에서와 같이 주님의 부르심에 무응답으로 해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늘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 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주님이 생명을 주셨고 성덕으로 성화되어서 하느님 영광 돌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내가 죽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서 하느님 안에서 영광 돌릴 수 있는 것..나를 포기하는 것이 결국 하느님 영광 돌리는 것의 행동 수반입니다. 두번째 부분에서 예복을 준비하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나는 누구인가와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 심판대에 나는 서게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앞에 선다는 것을 생이 마감한 후에 알아차린다면 그것이 심판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주님 현존 안에서 매일을 살아간다면 죽음이 심판이 아니라 환대입니다. 하느님의 환대에 늘 응답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늘 축제입니다. 늘 주님 안에서 살아왔기에 심판이 아니라 늘 성찰과 성덕의 삶으로 응답하고 주님의 늘 보호하심에 온전한 내어 맡김의 삶이기에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보는 기쁨의 열망이 이루어 지는 결정판입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결정판이 죽음입니다. 그것이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현재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늘 나는 누구인가? 늘 어떤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가?를 물어보고 그 답을 주님안에서 발견하면서 걸어가는 것이 나의 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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