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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31일 (토)
(녹)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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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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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11 ㅣ No.192771

김건태 신부님_겸손한 이들의 희망 

 

어제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안식일에 예수님이 수종을 앓는 사람을 치유해 주시는 모습을 예의주시하면서, 안식일 규정을 근거로 마음으로 이미 그분을 단죄한 바 있습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예수님이 오히려 식사에 초대받은 동일한 인물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예의주시하십니다.

당시에는 초대받은 사람 스스로 자기의 처지에 맞는 자리를 골라 앉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웬만하면 어림잡을 수 있는 나이순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채기 힘든 품위나 존경의 정도에 따라 좌우되었으므로, 스스로 ‘귀한 사람’ 곧 자신을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한 사람들은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썼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윗자리를 고르느라 부심하던 사람들을 향하여 ‘지혜의 가르침’을 선사하시나,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잠언 25,6-7 참조). 어떤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 윗자리보다는 아랫자리 또는 끝자리를 고르는 것이 슬기로운 선택이라는 가르침은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초대한 이가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하고 말한다면,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수치스러움의 정도는 가중될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인간의 심리 세계로 좀 더 들어가 살펴보면, ‘나 못났다!’ 하는 사람이 제 자리를 찾아 명예롭게 윗자리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는 시선보다, ‘나 잘났다!’ 하는 사람이 제 자리를 찾아 수치스럽게 아랫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눈초리가 더욱 가혹한 것은 사실입니다. 거의 경멸적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보편적인 ‘지혜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어떤 사람이 하느님 나라 구성원으로 적합한 사람인지를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구원의 세계에 관한 가르침으로 넘어가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비우고 스스로 낮추는 사람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감히 자기 자리를 주장하거나 고집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은 각자의 자발적인 평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고유 영역, 인간이 함부로 범접하거나 무엇인가를 주창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터에, 끝자리 외에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의식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삶을 살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말할 수 있고 희망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오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확신을 단죄하십니다. 이들은 낮아질 것입니다. 스스로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자평하며 현세에서 그에 해당하는 혜택을 찾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 세리들, 죄인들, 하느님 앞에 작은 존재임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높아질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하루,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자세로 마음에 주님만을 모시려는 사람들임을 드러내도록 힘쓰는 가운데, 세상의 잣대와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시선을 오로지 주님께 쏟을 수 있음을 행복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귀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4,1.7-11: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잔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보시고 말씀하신다. “윗자리에 앉지 마라.”(8절) 이는 단순한 예절의 교훈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질서에 대한 가르침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인간의 명예나 지위가 아무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직 겸손과 진실한 마음이다.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8절) 참된 겸손한 이는 자신이 모든 것을 받는 사람임을 안다. 그는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양보하며,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겸손의 계단을 오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은 곳에 이를 수 없다. 겸손은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의 첫째 단이다.”(Sermo 69,2 의역) 이 말씀은 복음의 사다리 비유를 깊이 있게 해석해 준다. 인간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겸손이라는 은총의 디딤돌을 밟고 하느님께 나아간다. 야곱의 사다리 또한 바로 이 은총의 상징이다. 그 사다리는 인간의 영과 육이라는 두 기둥 위에, 겸손과 자기 수양이라는 가로대가 놓여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밟고 조금씩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간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교만은 하늘에서 천사를 떨어뜨렸고, 겸손은 땅에서 인간을 들어 올렸다.”(Hom. de humilitate 의역) 교만은 하느님을 밀어내고 자신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으려 하지만, 겸손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하느님을 모신다. 하느님은 겸손한 자 안에 거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신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세리의 기도는 그 전형이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그 겸손이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교리서도 “겸손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인간이 자기의 자리를 인식하게 하는 덕이다. 겸손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닫고, 모든 선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2559, 2628, 301항 참조)라고 말한다.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주님이 자신 안에서 드러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1절)라고 하신다. 겸손은 단순한 인격의 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 길이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이것이 바로 겸손의 완성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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