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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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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구름 같은 증인들에 둘러싸인 교회
[말씀] ■ 제1독서(묵시 7,2-4.9-14) 초대교회 신자들은 로마제국에 의한 잔혹한 박해로 말미암아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려온 ‘주님의 날’, 승리를 소리 높여야 할 그날은 정녕 다가오지 않을 것인가? 사도이며 복음저자인 요한은 묵시록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주님의 날’은 이미 와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날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신앙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을 보는 사람들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예수님을 따를 때 영원한 승리가 보장될 것입니다. ■ 제2독서(1요한 3,1-3)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을 확신하고 그 사랑에 우리 마음의 눈을 열 때 우리의 모습은 바뀔 것입니다. 곧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이는 언젠가 분명히 드러날 현실입니다. 주님의 승리는 이처럼 그분이 택하신 자녀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완성될 것입니다. ■ 복음(마태 5,1-12ㄱ) 단순한 사람들로 구성된 청중을 향하여 예수님은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설파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여기서 그 기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새김] 좌절과 체념의 시간 속에서 몸부림칠 때, 또는 시련으로 말미암은 고독이 온몸을 짓누를 때, 우리는 힘과 용기를 찾기 위해서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 사람이 사라져 이 세상에 없을 때도, 그에 대한 추억은 변함없이 그 기능을 발휘합니다. 소중한 그의 현존은 죽음을 넘어서도 여전히 자리하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인 우리는 우리를 앞서 하느님의 길을 걸어가셨던 분들을 너무나 자주 잊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 우리를 그들과 맺어주는 사랑의 고리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힘과 기쁨의 샘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알려져 있거나 아니면 잊혀 있는 이분들을 기억하면서, 모든 세대를 넘어서 이어져 온 무한한 사랑의 고리를 다시 의식하도록 초대받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 나가며,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히브 12,1-2) 용기를 얻고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신앙의 증인들이신 성인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삶을 본받아, 언젠가는 그분들과 함께 영원한 천상 공동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다짐과 희망으로, 오늘 하루를 거룩하게 다져나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5,1-12: 참 행복(산상설교) 1. 모든 성인을 기리는 날, 우리도 성인이 되라는 초대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이다. 이는 이미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있는 교회의 승리자들을 찬미하는 날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부르심을 새롭게 확인하는 날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성인들을 주신 이유는 단지 그들을 기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을 본받아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주시기 위함이다.”(Sermo 88 의역) 아무리 많은 성인을 공경하더라도 내가 성인의 삶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분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 산 위에서 들려주신 주님의 행복 선언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 제자들에게 참된 행복을 가르치셨다고 전하고 있다. 산으로 오르셨다는 것은 단순한 장소적 이동이 아니라, 제자들을 더 높은 차원의 삶으로 이끌고자 하신 상징적 행위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분은 산 위에서 가르치셨다. 이는 율법이 시나이산에서 주어졌던 것처럼, 새로운 율법 곧 은총의 복음을 산 위에서 선포하시기 위함이다.”(In Matthaeum Homiliae 의역) 따라서 참 행복은 단순히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 율법, 곧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선언이다. 3. 참 행복의 역설과 그 의미 예수님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불행처럼 보이는 상황을 오히려 참 행복이라 선언하신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에서 주목받거나 존경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이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참 행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께서는 거짓 행복을 뒤엎으시고, 진정한 행복이란 세상의 부와 권세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위에서 발견된다고 가르치신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Lib. V,62 의역) 4. 성인의 삶: 참 행복의 완성 모든 성인 대축일에 우리가 기리는 성인들은 바로 이 참 행복의 길을 살아낸 분들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실패자나 고통받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삶은 하느님 안에서 영광으로 드러났다. 교회 헌장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저마다의 삶의 처지에서 완덕으로 부름을 받고 있다. 모든 신자는 성덕을 지향해야 하며, 그 길에서 사랑이 완덕의 유대이다.”(40항 의역) 즉, 성인이 된다는 것은 선택받은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소명이다. 5. 오늘의 적용: 성인이 되려는 결단 오늘 대축일은 성인들을 공경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성인이 되기를 결심하는 날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우리를 깨우친다. “당신이 성인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성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그 길을 걷기를.”(Sermo 335,1 의역) 우리 각자가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참 행복의 길을 두려움 없이 살아가야 한다. 세상이 외면하는 가난, 온유, 자비, 박해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이다. 6. 결론 오늘 우리가 기리는 모든 성인은 산상설교의 참 행복을 온전히 실천하며 하느님의 얼굴을 드러낸 이들이다. 그들은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는 주님의 초대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그 길 끝에 하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갔다. 우리도 이 미사 안에서 결심하자. 단순히 성인들을 흠모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참 행복의 길을 살아내어 우리 자신이 성인으로 나아가도록, 그리고 언젠가 하늘에서 그들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자리에 참여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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