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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5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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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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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3-16 ㅣ No.145315

계몽사라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저도 계몽사의 책을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계몽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을 깨우치는 의미가 있습니다. 선진 문명과 문물이 뒤쳐진 문명과 문물을 이끄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계몽주의라는 시대정신이 있었습니다. 계몽주의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계몽주의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무시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21세기는 공감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00세 시대를 살면서 계몽의 시대보다는 재미와 의미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은퇴한 후에 살아야 할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시대입니다. 재미와 의미가 만나서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공감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는 계몽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계명과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계몽의 대상이었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도 죄인이 되었습니다. 계몽의 시대에는 권위와 가식이 있었습니다. 차별과 통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계몽의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공감의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머물면서 함께 지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벗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권위와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권위와 질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를 공감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핵심인 성체성사는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의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성사입니다. 이보다 완벽한 공감은 없습니다. 교회가 생기를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교회가 계몽의 가치를 우선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가시어 이사야서를 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오빠 나자로를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나자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 나병환자, 중풍병자, 청각장애자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그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권한과 능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병을 고치는 능력,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 복음을 선포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5,000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공감의 가치를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마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사랑이 생명을 살리고, 이 사랑이 희망을 주고, 이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잊지 않고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자비와 용서, 친절과 온화함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생의 전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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