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더보기
2021년 5월 15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성주간 수요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3-30 ㅣ No.145678

1910822일은 조선은 일본에 의해서 합방되었습니다. 어느덧 111년이 지났습니다. ‘한일합방, 경술국치라고 이야기합니다. 부모님은 일제 강점기를 사셨습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제적인 흐름을 읽지 못하고, 근대화의 길을 걷지 못했던 조선의 정부의 책임입니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에 대한 의존입니다. 자주의 길을 걷지 못하는 나라는 약소국의 비애를 겪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침략입니다. 이미 일본은 자국의 힘이 강해지면 조선을 침략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임진왜란을 통해서 경험했습니다. 명치유신을 통해서 힘을 키운 일본은 조선을 향해서 침략의 야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36년 동안 일제 강점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민족은 191931일 만세운동을 통해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였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를 통해서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돌아보면서 친일파(親日派)’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친일파는 일본에 의지해서 일신의 양명을 도모하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친일파는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동족을 괴롭히고, 팔아먹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친일파는 내선일체라는 말을 입에 달며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친일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었습니다. ()은 부친(父親), 모친(母親), 양친(養親), 선친(先親)과 같이 부모에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친일파는 일본을 부모로 섬기면서 사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조선의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직도 생존해 계신 위안부 어르신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는 허위주장입니다. 저명한 학자들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규탄성명을 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교수들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지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지 7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고통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면 주님께서 지고 가시는 십자가를 함께 지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입니다. 유다는 바리사이파를 부모처럼 생각했습니다. 대사제를 부모처럼 생각했습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를 부모처럼 생각했습니다. 친바리사이파, 친대사제파, 친로마파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라고 하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숨어버린 제자들입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죽는 것보다 필요하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던 대사제 가야파입니다. 무고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던 빌라도입니다. 시류에 편승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땀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파스카의 성삼일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교회 전례의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 성삼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들의 몸가짐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는지 묵상하면서 오늘 하루를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대사제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 앞에 자신의 양심을, 친구를, 하느님과 함께한 신앙을 팔아넘기는 것을 봅니다. 우리를 악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비우는 무소유의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523 9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