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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매일미사 묵상] 하늘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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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mikael6424] 쪽지 캡슐

2022-08-13 ㅣ No.156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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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같은 사람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이들과 같다는 표현은 어떠한 의미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어린이의 모습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말씀해주시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예수님께 찾아와 기도를 부탁하고 있지요.

자신들에게 손을 얹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수석 제자였던 베드로의 눈에는 철없는 부탁으로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치유와 기적을 위해 예수님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였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기도만 드리던 날들도 있었을 테지요. 

그래도 수많은 인파 중에는 안수기도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들을 위한 안수기도 한 번을 제대로 청하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갈 때

 

 어린이들을 향한 베드로의 꾸지람을 미루어보아, 

예수님께 다가온 어린이들은 특별히 아픈 곳이 있어서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너무나도 해맑게,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서 안수기도를 청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수많은 고민을 합니다. 

'내가 이러한 청을 하느님께 드려도 되는 것일까?', 

'평소에는 찾지도 않다가 갑자기 불쑥 나타나도 되는 것일까?', 

'이 정도의 일은 청할 것이 못되지 않을까?', 

'하느님께 청하기 전에 내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문제로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맞는 걸까?'

 

 이러한 섣부른 고민들은, 

전지전능하며 무한한 하느님의 존재를 임의적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하느님은 가만히 계시는데, 

하느님의 존재를 더 빈약하고, 냉랭하며, 이해타산적이고, 

무자비한 모습으로 그려버리는 격이 되어버리지요.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태도

 

  복음에 등장하는 어린아이들은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려한다며 어린이들을 물러내려 하였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판단은 베드로의 교만이자 무지함에 비롯된 행동에 불과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우리가 그분을 감히 배려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배려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인간이 신에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는, 

배려나 자비가 아닌, '찬미'와 '찬송', '흠숭'과 '경배'입니다.

 

 하느님을 배려한답시고, 

하느님을 자신보다 더 낮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하늘나라는 당연히 자신보다 더 좁은 공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보다 더 좁은 곳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우리의 생각에 다 들어올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더 이상 진짜 하느님이 아닐 테지요.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을 커다란 존재인 하느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상황적인 요소, 사회적인 시선, 도덕적인 잣대, 

지식이나 문화, 또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아무 이유나 근거 없이, 그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어린이들처럼

 

  복음 속 어린이들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자신의 처지를 남들의 처지와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좋았고,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기에, 

그분 앞에 나아갔을 뿐입니다. 

어쩌면 하늘나라는, 

우리가 원할 때마다 하느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느님께 나아가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내면 속에는 복음에 등장하는 어린이와,

그를 막았던 베드로가 공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 하는 순수한 그 마음을, 

이성적이고 사회적이며,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베드로라는 어른의 마음이, 예수님을 향한 길을 막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에게 예수님의 목소리를 빌려 속삭여 봅니다.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너의 마음은 바로 그 어린아이 같은 마음뿐이니라." 

 

출처: https://parchment.tistory.com/entry/하늘나라는-어린이들과-같은-사람들의-것 [양피지:티스토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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