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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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저 고해성사를 인간인 사제에게 하는게 아니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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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62.134.*]

2021-01-26 ㅣ No.12460

아직도 개신교측 일부 신자는 천주교의 연옥교리와 고해성사를 비판할 것입니다. 필자 경우도 문단내 전주지회장으로 위촉된 자매가 장로로 있다는 어린시절 약현을 닮은 전주예수성심개척교회를 초대하여 방문, 살아계신주와 주만 바라볼지라를 신명나게 봉송하고 왔는데 당시 간증으로 초대된 탤런트 송재호님이 고통받는 예수님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등지고 증거하는 열정은 좋았으나 갑자기 흥분하시며 천주교의 연옥과 고해 두 가지 교리를 맹비판 하기에 침묵중 분심의 일화가 있습니다.

 

이를 깊은 나와 깊은 너의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성령의 열매가 중요한데 필자는 교란을 받았고 즉시 나보다 열정적 간증이기에 괜찬타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상대적 사랑 또는 자비로 절대적 자비와 사랑을 향유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송재호님이 말하길 "오늘이 식목일이고 청명, 한식이라 차가 막히니 일찍 출발할걸이라는 독백을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선 김수환 추기경님 49제 마지막을 알리기에 조수석 침묵의 필자는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개인적으로 결혼 기념일입니다"라고 했더니 송재호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까 제가 한 말이 맞는지요?"라고 묻기에 천주교인들을 전례를 우선 지향하고 기독교인들은 말씀을 우선 지향한다고 했지요. 그 담은 절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고백이 아닌 고해, 풀어주어 가게 한다는 바유로 때웠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기에 고백과 고해 또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기도가 아닌 주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과정에서 천주교 평신자인 우리들은 뱀처럼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역을 지나기도 하지요.

 

평신자들은 죽음의 죽음을 위한 순례의 사제들과 주파수가 다를수 있기에 인간적으로는 하도 미사 강론시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 들려 사제들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을것입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있는 종교다 보니 냉담, 가출도 잦고 사제들의 계속하여 적막 공간으로 느껴지기 쉽상인 고해소와 성당, 수도원의 미사를 동경하면서도 그곳으로 찰나 시선만 두는 일부 또는 다수 개신교인과 다를바 없고 실제로 천주교회에 돌아온 골수 개신교인들과 불자들이 난리 부르스를 추고 신심이 미약하고 천주교는 어둠다 하는 신자들은 칼날위 맨발로 지나도 피 한 방울 안나는 무속에 힘을 빌거나 왕국회관 등의 50% 또는 권력과 부에 연연하는 정치계에 나타나기도 할 것입니다. 이 어려운 모든것을 삼위일체 신비와 수덕으로 바꾸는 것이 신자들의 신원과 사명 즉 원죄를 타고난 인간의 연옥과 풀어주어 가게하는 고해가 아닌 치유성사인 고해성사라고 말씀드려 보세요.

 

연옥과 고해의 문은 하느님이 선택하시는 것이 아닌 기독교 성도들 지적대로 죄많은 우리가 선택하고 지상에서 끝장을 보며 선종하며 천상으로 돌아가는 여정인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해주시는 전대사를 일제시대 일본과 절충할 수밖에 었던 사람들이 교과서에 면죄부라 함도 그렇지만 이는 남녀의 동물성, 식물성에 따른 갈등과 같이 극복을 위한 그 로망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성모 엄마도 있다보니 욕얻어 먹어도 싸다고 맞장구도 쳐보세요. 실상 모든 문화 예술 또한 그런 갈등과 질곡을 화해일치하도록 이끄는 것이 복음 사도직임을 성경을 통해 기억하며 다질수 있는것입니다. 그들의 비판속에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음양의 대화를 마침내 성부와 성모님 대화로 받아들이는 혼인잔치 비유 인생에서 두 번째 영혼의 탄생에 이어 세 번째 영원한 예비 신랑 신부 수업 훈련이 연옥과 고해교리라 해보세요. 그것은 사령으로서 장기들을 위해 속아주는 뇌에게 가슴이 완전한 치료인 치유로 고백함도 고해함도 가능한 것이기에 비난,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나나 인간은 그나물의 그밥이란 이야기기에 끝장을 보려는 한민족 또한 그냥 있는게 아니라 해보세요.

 

연옥교리와 고해성사는 천국으로 오르는 십자가의 사다리라고 말씀드려 보세요. 그것을 교리적으로 대화 방안을 강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천주교는 천주님 가르침을 믿는 교회이기에 고해소 역시 천국이냐 연옥이냐 지옥이냐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것은 그대의 자유의지다. 사제들은 겸손과 섬김으로 하느님 치유를 전하는 일반직 출입하기 어려운 양성 환자들의 화장실 청소까지 도맡아야 하는 간호 조무사이기도 하여 당신을 하느님의 인턴 또는 중재자라 칭하기도 하는데 목자로서 신의 아버지 즉, 혼이 아닌 영의 연옥과 고해로서 평신자를 초대하고 있다고 해보세요. 이는 세속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며 아무에게나 비밀을 말하지 않는 이치와 같고 절대적인 하느님 은총으로 영육의 병고를 치유받는 성사라고 말씀드려 보세요. 승복을 원한다면 워낙 인간적인 가짜뉴스들에 교란 받았기에 대화가 꼬여 답답해 죽기도 할것입니다.ㅎ 들리는 소리와 말씀도 들리도록 밀당이 소중한데 이 밀당은 빙산의 일각이 아닌 그 위, 아래 보고인 침묵속에 있기에 호흡 정화를 또한 사람들은 좋아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는 부메랑 원리로 세속의 공신판 사심판대에 섰을때 헌법소원 산을 이루는 서민 피고들이 지금 우리 자신일 수 있기에 늘 깨어나는 전략으로 길을 가다 절대 그 누구와 시비붙지 않는 편태같은 것이라 전해보세요. 인본주의 과반수의 사람은 여전히 이어령 비어령 신판자로 머물고 피고를 죽여라! 죽여라! 하기 때문입니다.

 

2. 천주님은 상선벌악도 주관하시고 최초의 피조물 빛과 관련된 빛의 천사였으나 지상으로 떨어진 루치펠일 수 있는 나로 하여금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 삼위의 대천사를 따르는 레지오 크리스트, 레지오 마리애로서 어떤 사람은 그날의 식당에서 천주교를 비난하던 또다른 형제 앞에 침묵과 선문답의 목사님처럼 벌을 상으로 은총, 은혜로 받아들이는 훈련이라고도 말씀해보세요. 이는 가톨릭 교리에 약한 신자들이 이나라 난리 부르스 삼권분립처럼 지옥벌과 같은 연옥 고통을 지나기도 하는것인데 이때의 경계할 것은 선민의식인 것입니다. 약하고 가난한 이웃을 먼저 바라보며 이겨내야 할 일들인것입니다. 하느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태어났다 하시고 산고보다 더 어려운 예수님 탄고를 묵상하며 이 땅에 태어났다 해보세요. 루터에 대한 사과도 교종성하께서 하신걸 받아들이자 하면서지요.

 

루터도 사실은 독실한 성모신심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천주교의 연옥교리가 담긴 성경 7권을 위경이라 하며 개신교는 66권, 천주교는 73권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것은 동감을 미투로 발하는 단순 여심과도 같도 누구나 그렇게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는 시대에서 아내가 70% 청구를 남편이 30% 청구를 하지만 그러면서 다시 남중내편, 안의 해가 되는 음악을 더 좋아하는 한국인들이라고도 해보세요.

 

이처럼 사람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신, 구약 두가지 약속을 보고 듣고 믿으며 믿고 듣고 보는 신약백성으로 거듭납니다. 여기서 탄생 200주년을 맞으신 한국 사제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벼슬과 금권을 주겠다는 당시 과료들이 이전투구로 명멸해 가면서 과연 피해의 아픔이 길었을까요? 가해의 아픔이 길었을까요? 천사와 사람도 죄에 유혹과 죄에 빠질수 있기에 대중들이 사랑은 받는것이 아니라면서란 노래나 만남, 사랑으로, 바람의 소원, 당신과 나, 이별 이야기 이런 가요를 더 좋아하는 것들도 인지상정이랍니다.

 

3. 이는 연옥교리와 더불어 고해소의 죄를 외부 유출시키면 사제가 옷을 벗어야 하기에 우리가 대인 프러이버시를 위한 식별력을 수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해주세요. 기독교인들에게 연옥은 필수가 아닌 교양과목일 수도 있기에 그들의 믿음 천국 불신 지옥도 좋은 이야기다. 그대들이 수고하고 어부지리로 천주교회가 인기를 구가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이런식으로 이야기 해보세요.

 

4. 천주교리의 삼위일체는 이처럼 천국, 연옥, 지옥 삼위일체 신앙으로서 보편 사랑과 자비이기에 우리가 자아의 생각과 말과 행위 통일을 위한 경계력이 중요하기에 그대의 구체적 지적도 맞는 이야기지만 성직, 수도자들의 편태(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와 소임과 관련되었다 이야기 해보세요. 천주교회는 그러한 성부 성모 성자 삼위일체도 믿기에 나는 작아지고 그분은 커지는 과정에서 너와 나는 첫 교종이신 베드로 성하를 믿고 그리스도안의 한 핏줄이라 해보세요. 그대의 이야기는 악순환 세속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명약이 될것이다.로 예언을 해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중요한건 사이비들도 하는 하느님을 미카엘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 라파엘, 가브리엘 대천사와 함께 사람의 아닌 죄를 미워하는 것이랍니다.

 

5. 천주교회 가르침 천주존재, 상선벌악, 삼위일체에 이어 강생구속은 잠수중의 인사정보작전 저력으로 군수만 세계 9위된 이 어려운 세상 자녀들에게 평화를 전하고자 하는 약한 남녀가 아닌 부모 마음으로 기차길을 향하는 여정이기에 천주교인들은 그 흔한 향락, 영원 앞의 찰나인 근력 좋아야 100년인 인본주의가 아닌 자녀에 대한 부모마음으로 거듭나는 강생구속 교리를 위한 진행형이라고 해보세요. 강생(부활) 구속(대신 속죄하다, 보속과 사랑을 드리다.)의 뜻인데 많은 사람들의 네 가지중 본의 아닌게 너살고 나죽자의 예수형이 아닌 너죽고 나살자 뺑소니(세계 2위 교통사고 국가 한국에서)로, 너죽고 나죽자(세계 2위 이혼 국가 한국에서)의 부부싸움으로 나살고 나살자 공자형을 원한다지만 숨박꼭질 중이기에 승복도 좋치만 더 중요한 겸손과 섬김을 위한 연옥과 고해는 하늘과 땅 십자가의 무지개 사다리라 전하며 선택이라 전해보세요.

 

6. 한국인은 누구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세계 1위의 지능과 감성과 창조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청소년들에게 불노소득의 유튜브 장사 등으로 안주하는 현실을 위해 우리는 가슴의 창을 세 번 두드린다 해보세요. 연옥교리와 고해성사는 사람이 사람에게가 아닌 두 사람이 하느님께 올리는 미사이자 제사이자 예배이자 크리스마스로서 그것은 축제가 아닌 망부활이라 말씀드리고 당시 해운대 개봉과 cbs 진행을 맡는다며 기뻐하시던 송재호님 영과 혼이 영만 남도록 우리가 더불어 감사하고 청원할 수 있도록 갈수록 지능화되고 도덕불감증으로 교란받는 인성들의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21C 펜데믹과 언텍트에 있어 우리가 할 일은 아침에 주모경과 사도신경으로 무장하는 것이 하위 인간의 법보다 상위의 하느님 법으로 용서와 화해의 탄창 사랑의 총으로 무장하는 것이라 해보세요.

 

7. 중요한 것은 승복이 아닌 공감으로 공감에서 동감으로 동감에서 동의로 지상에서 천상까지의 기찻길 여정 함께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기에 악의 교란 역시 선순환으로 이끄는 사도직으로 함께가자 해보세요.

 

8. 끝으로 연옥교리와 고해성사는 하느님과 나를 잇는 침묵과 같은 것이라고 전해보세요. 오늘도 우리는 언제나 오늘만을 살지만 내일로 가는 마차 함께 타는것이 중요하지요. 그것이 글과 그림과 노래 하나되는 민족이라 하시구요.

 

김수환 추기경님 어록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가 되기 위하여 창조되고 구원되었습니다.”
(성서 못자리 파견 미사. 명동 대성당. 1992.6.15)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셋날이 지났다(창세 1, 26-31).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들을.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모든 신들 위에 경외로우신 분이시다(시편 96, 3-4).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 18-19).”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1요한 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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