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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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두레]어느 젊은 사제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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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 [cpaj] 쪽지 캡슐

2000-12-14 ㅣ No.15658

빛두레 2000.12.17(제491호)

쉐마

 

 

어느 젊은 사제의 고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소서" (시편 24,4)

 

 

 

  서품된지 4년 차인 어느 보좌 신부의 한 주간의 사목생활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재적신자 8,000명인 대도시 본당에서 주임신부를 보좌하여 사목에 임하고 있지만, 주임신부의 재량권에 의해 업무량이 많고 적어진다. 1주일간에 평일, 주일에 봉헌하는 미사 댓수는 평균 12∼15번이고, 수백 명의 고백성사를 들어야 하고, 병자성체, 병자성사도 자주 있고 주간에 이루어지는 각종 약혼, 신심단체에 형식적이나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곳이 50단체(레지오 모임 포함) 이상 된다. 예비자 교리 강의도 두 번 이상해야 한다.

 

  그보다도 그의 사목중에 가장 관심과 걱정이 되는 것은 청년, 학생, 아동문제이다. 800명 재적 초등학생 중에 주일학교에 나오는 숫자는 250명. 중고생은 700명 중에 100명 정도이다. 또한 청년, 대학생은 재적신자 중에서 10%도 안된다. 교리교사 문제, 교육재료문제, 예산문제 등이 그의 사목생활에 stress를 주고 있다. 또한 청년들의 회합, 모임이 거의 저녁시간에 이루어지기에 하루의 사목이 끝나고 자신의 시간을 갖는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이다. 때로는 친교의 시간(다과회, 술잔 나눔)이라도 있는 날이면 밤 12시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책을 보거나 사목자료를 검토할 시간도 없고, 세미나, 심포지움에 갈 시간도 없다. 그는 사람에 지치고 만다. 어떤 주일은 주임신부의 부재로 주일에 여덟 번의 미사를 집전한 적도 있다.

 

  요새 그는 사제생활 자체에 대해 고뇌를 하게 된다. 이것이 사제 생활인가? sacrament maker로 기계적인 몸짓을 해야만 하는 자신이 두렵기도 한다. 가끔 묵상시간에 그는 "이것이 사제의 직무입니까?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고 복음선교입니까?"라고 고뇌의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4∼8년 보좌 신부 생활을 마치고 주임신부로 나갈 때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적인 사목자로서 굳어진 자신의 모습일 것이란 예상을 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교회란 조직체를 유지 내지 성장을 위한 온 몸의 투신이 과연 사제직의 본질인가?하는 번뇌적인 상념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가 고뇌하는 부분은 본당 공동체내의 소외된 신자들에 대해서 전혀 사목적인 배려가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성당에 오는 신자들만이라도 사목적 봉사를 하는데 지치고 있는데, 50% 이상 본당 사목에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의 여유가 전혀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제는 가난한 이들과 무력한 이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젊은이들에 대해 특별관심을 지녀야 한다.(사제직무교령 6장)는 교령에 대해 전혀 응답하지 못하는 자신의 위상이 부끄럽고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는 성당에 나오는 신자들에게 미사, 강론, 성사를 주면서 이것이 하느님사랑, 이웃사랑의 실천이란 가치를 뚜렷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의식은 이런 사제생활 위상이 현재의 제도교회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임무임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의 복음선포의 사명과 직접 연결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전통적인 제도교회의 관리자란 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원의가 자주 떠오른다.

 

  "교회는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해명할 의무가 있다.(사목헌장 4장)란 가르침과 현실교회의 모습과는 큰 거리감이 있음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한국내의 인권회복문제, 공해문제, 특히 남북화해와 통일문제 등에 대해서 투신하고 있는 다른 사제들의 위상에 부러움의 시선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배사제들처럼 본당신부가 되고 나면 본당 사목의 기득권에 안주하여 그냥 많은 신자들로부터 존경과 배려나 받으면서, 고뇌없는 제도교회의 관리적인 기득권에 안주해 버릴 것 같은 자신이 두렵기만 하다.

 

  "사제직은 시대의 징표에 대한 고뇌를 안고 수행되야 한다. 특히 소외된 민중에 대한 희망과 기쁨을 제시하는 사제상을 지니지 않는 한, 사제의 위상은 추락할 것이다"란 어느 시인의 뇌까림이 지금도 이 젊은 사제를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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