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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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어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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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1-11-02 ㅣ No.26004

           

 

      

솔~~솔~~솔~~오솔길에 빠알간 삐딱 구두 아가씨~~~

 

 

 

한 계절이 지나가는 루미의 뜨락에도

 

가을이 그렇게...한 잎 ...두 잎..지고 있네요.

 

어서 오세요.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 한자락 스며드는

빠알간 구두 아가씨 루미의 집이예요.

 

네~~ 제 수다를 들으시기전 커피도 한잔 드셔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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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얼마전 아주 멋진 어떤 부부와 함께한

기차 여행을 다녀왔어요.

 

제 성격이 지옥행 특급 고속버스형 성격이라

 

가급적 기차 여행은 피하지만

 

기찻길 옆에 이즈음 아름답게 흐드러져 피어있을

 

코스모스꽃들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른 일요일 아침이라 기차안은 거의 텅텅 비어 있었어요.

 

모처럼 마음껏 가을 정취에 함빡 젖은

 

나만의 기차여행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제 앞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부부가 바로 제 앞좌석에서 번호를 확인하더니,

 

의자를 뒤로 밀어 함께 앉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제게 물어 오시더군요.

 

아마 갓난아기도 있고 짐들이 많아서

 

좀 넓은 공간이 필요하셨나봐요.

 

전 순간적으로 "아차"했지만 아기를 품에 안은 아저씨의 상냥하고

 

매우 예의바른 태도에 압도되어(?) "네, 그러세요"하고

흔쾌히 그리고 얼떨결에 승낙해버리고 말았어요.

 

그런데......사실 제가 곧바로 승낙해버린 건

 

어쩜 그 젊은 애기아빠의 불편한 한쪽 다리와

 

젊은 엄마의 똑같이 불편한 다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솔직히요...

 

그 젊은 부부는 서로가 한가지씩 장애를 지닌 부부였어요.

 

남편은 소아마비, 부인 역시 소아마비와 청각장애(후에 알게됨).

 

의자를 뒤로 밀어 부인은 제 곁에 앉고

 

아기 아빠는 잠자고 있는 아기를 무릎에 앉히느라

저희와 얼굴을 마주보고 앉게 되었어요.

 

전 솔직히 순간적으로 당황했어요.

 

모처럼만의 기차 여행에

 

나름대로 멋진 가을속의 기차여행을 기대했었는데

 

어린 아기가 딸린 젊은 장애인부부와

 

갑작스런 동석을 하게 되어서요...한 몇 분

 

저 혼자 어색한(?) 침묵을 지키다

 

"아기 몇개월 정도 되었어요?"

 

"아기가 참 이쁘네요."

.

.

 

"네, 7개월 정도 되었어요. 감사합니다...허허."

 

아기아빠의 짧고 명쾌한 대답에

 

금새 조금 어색하고 낯설었던 몇 분간의 어색함이 깨어지고

 

우린 곧 더 편안한 자세로 마주 앉게 되었어요.

 

전 감히 제 곁에 앉은

 

젊은 아기 엄마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꼭 제가 죄지은 것 마냥...

 

괜스리 미안한 그런 느낌에 엉뚱한 곳에

 

이리저리 눈길을 주거나  창밖을 내다보곤 했었어요.

 

애써 그 젊은 부부의 장애에 대해 태연하고...

 

제겐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듯이요...

 

그게 처음 만난, 생면부지의 다리 장애를 지닌 부부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어떤 예의감(?)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젊은 부부는 상당히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 분들 같으셨어요.

 

덩달아 저도 침묵을 지키며 찻장밖에 펼쳐지는

 

가을 들녘들과 찻길가에

하늘 하늘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며

 

가을날의 애상에 젖어들었죠.

 

그러다 문득 제게도 호기심이 발동해 제 옆에 앉아 있는

 

아기 엄마를 아주 조심스럽게 훔쳐보기 시작했어요.

 

수수한 화장끼 있는 얼굴에 아주 다소곳히 앉아있는 자세가

 

그녀의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품위가 느껴지는 아기 엄마.

 

그리고 사색적인 넓은 이마를 가진

 

30대의 잘생기고도 무척 예의바른 아기 아빠.

’ 이 두 분은 어떻게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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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역을 출발해 얼마쯤을 칙칙 폭폭 거리며 가도록

 

이 젊은 부부는 한 번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요.

 

대신 그들 사이엔 아주 아주 조용한 침묵과

 

잔잔한 눈맟춤만이 있었을 뿐이었어요.

 

아기를 안고 아기 엄마 맞은편에 앉은 아기 아빠의....

아주 잔잔한 아내에 대한 눈맟춤!

 

제 느낌엔 그 젊은 아기 아빠는 온통 자신의 아내만

 

바라보고 있는거 같았어요.

 

결코 강렬하지 않으면서도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애잔한 시선으로요!

 

’아기까지 낳고 살면서 저렇게 자신의 아내에게

 

한결같이 잔잔하고도

부드러운 시선을 줄 수 있을까?

 

자신의 아내가 저리도 이쁠까?

 

서로 장애가 있어 아마도 어렵고도 험난한 시간들을 보내다

 

인연을 맺게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애틋할지도 모른다고.’

 

이 조용한 젊은 부부를 옆에 두고서

 

저 혼자 그렇게 상상해 보았어요.

 

그지만 문득 그 젊은 장애 부부의 조용한 침묵속엔 왠지

제 마음을 잡아끄는 미묘한 어떤 힘이 있었어요.

 

그들의 침묵속엔 서로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고....

 

왠지 이 부부는 서로를 무척 사랑하고 있고....

 

그들만이 알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그들만의 행복과

 

평화스러움이 새록 새록 풍기고 있었어요.

’참~~ 특별한 부부다. 그래, 서로 장애를 지녔다는 것도

 

나처럼 정상적인 사람에겐 특별하고

 

우리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이 부부는 서로를 특별하게 사랑하나보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정말 서로가 특별하기 땜에

 

서로의 그 특별한 장애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을 특별 대우하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서로를 아주 특별하게

보호해주고 서로 사랑해 주나부다.’

 

특별한 장애 부부이지만 그들은 이렇게 예쁜 아기까지 낳고

 

권태를 느낄새도 없이 서로 그렇게 잔잔한 눈맟춤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는구나....

 

그래, 세상은 그 누구에게나

 

정말이지 살아볼만한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야!

 

근래의 나를 보라!

 

잠들기 전 얼마나 내 자신을 뜨거운 후라이팬위에서

 

갖은 볶음요리를 해댔는가?

 

그 볶음 요리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그 분께 하염없는 불평의 불화살을

 

"준비하고 쏩니당~~ 받아 주소써~~~!했던가?

 

그 분은 아마도 지금쯤 내가 쏘아올린 불화살에

 

한 오도 정도되는 화상을 입고

 

하늘 나라 화상병원에 입원해 계실지도 모르겠다.....

.

.

.

 

얼마 후 이동 매점차에서 전 초코렛을 사게 되었고

 

아저씬 삶은 계란 한줄과 음료수를 사게 되셨어요.

 

계란을 손에 든 아저씨가 문득 앞에 앉은 아기 엄마를 향해

 

손짓을 하기 시작하셨어요.

 

저는 또 한번 놀랐어요....

그 손짓은 수화였어요.

 

아기 엄만 다리 장애뿐만 아니라 청각 장애까지 있었어요!!

 

한참 서로 수화를 나누더니

 

아기 아빠는 삶은 계란 하나를 저에게 건네시고

 

곧 삶은 계란 껍질 하나를 조심스럽게 벗겨내기 시작하셨어요.

 

문득 계란 껍질을 벗겨내는 아기 아빠의 손놀림이

무척 섬세하고 자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신의 아내를 위해 손수 계란 껍질을 벗겨줄 수 있는

 

저 아기 아빠는 참 넉넉한 마음을 지니셨나보다.

 

자신의 아내뿐만 아니라...세상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계란 껍질을 벗긴 후 아기 아빠는

 

마치 자신의 아내가 듣고 있는냥 그리고 들을 수 있는냥

 

"준용이 엄마, 계란 하나 들어요"하며 삶은 계란을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건네는 것이었어요.

 

남편이 벗겨준 삶은 계란을 조심스럽게 받는 아기 엄마!

 

제 입속엔 초코렛이 달콤하게 살살 녹고 있었지만

제 곁의 이 부부....

 

삶은 계란 껍질을 벗겨 아내에게 건네는 아기 아빠와

 

남편이 벗겨준 삶은 계란을 맛나게 먹는 아기 엄마의

 

이 달콤한 작은 행복에 감동되어

 

저는 제 입속에서 초코렛이 녹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었답니다.

세상에서 이 보다 더 행복한 부부가 있을까요?

 

저 같은 정상인들이 이들 부부를 보면

 

어쩜 동정심어린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진 몰라도

 

이 부부에겐 남들이 감히 훔칠 수 없고, 침범할 수도 없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그들만의 아주 작은 행복과 사랑이 있었어요.

...그래서 행복한 부부...

 

아기 아빠 역시 한 때 자신의 장애로 인한

 

절망과 고뇌의 순간으로 얼룩진 시간들을 보낼을테고,

 

그 아내 역시 다리 장애와 청각장애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을테지만

 

서로가 조금씩 부족한 장애인 부부로 만나

 

그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의 사랑으로 채워주고 있으니

이들이 어찌 부족함이 있는 장애인 부부이겠어요!

 

비록 다리 장애가 있지만

 

이 세상에서 삶은 계란 껍질을 벗겨줄

 

나만의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비록 다리 장애와 청각 장애가 있지만

 

나를 위해 손수 삶은 계란 껍질을 벗겨줄  

 

나만의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그 아기 엄마는

얼마나 행복한 여자인지요?

 

사랑과 행복엔 아무런 조건이나 순위가 없나봐요.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가 있음으로 해서

 

또한 ...단지 그로부터 사랑받음으로 해서

 

비록 장애가 있더라도 너무도 소중한 존재인...나!

 

나를 위해 삶은 계란 껍질을 벗겨주는 나만의 당신!

 

내가 벗겨준 삶은 계란을 받아 먹는 나만의 당신!!

 

나만의 당신이 있으므로 해서

바깥 저 곳 세상은 더 이상

 

추운 곳이 아닐꺼예요.

 

어떤 조건에도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있는한 행복이란 공평하게 주어지나봐요.

참, 마음 흐뭇한 어떤 부부와의 기차여행...

 

그 부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부부는 아니었지만

 

저는 그 부부에게서 아주 특별한 사랑과 행복을 느꼈었어요.

 

그래서 제 마음도 정말이지 모처럼 아주 특별하게 행복했어요.

아! 그래... 사랑이란 요런거야!

 

사랑이란,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삶은 계란 껍질 하나를 벗겨주는 것!

 

또,  사랑이란,

 

그가 벗겨준 삶은 계란 하나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

 

루미,

 

삶은 계란 하나에 가득 가득 담긴 사랑 하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루미의 기차 여행은

 

삶은 계란 하나에 가득한 사랑을 엿본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행복한...

 

장애인이면서 결코 장애인이지 않은 어떤 부부와 함께 한

정말 멋진 가을 여행이 되었답니다.

 

안녕히 계세요.

 

루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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