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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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신부님, 살레시오회 :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 안에 깃들어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눈여겨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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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2-01-21 ㅣ No.152401

12 사도의 선발은 예수님 공생활 기간에 있어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12 사도들의 합류로 인해 예수님의 공생활은 더욱 탄력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언젠가 예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제자들 한 명 한 명을 놓고 오랜 묵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많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스펙’입니다. 스펙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사람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겠지요. 취득한 자격증, 이수한 코스, 그간 받은 상장, 표창장, 감사장...

 

열두 제자의 스펙은 사실 보잘것없었습니다. 스펙이 보잘것없으면 성품이라도 무난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대기 좋아하는 제자, 성격이 불같은 제자, 드러내놓고 아부하는 제자, 당대 사람들로부터 매국노라고 손가락질받던 제자, 혁명으로 세상을 전복시키려던 제자...

 

공생활 기간 동안 제자들의 삶은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때로 불과 불이 만나 큰 문제가 생기기도 했겠지요. 때로 정치 성향을 달리하는 두 제자가 부딪쳐 불화와 반목을 거듭했겠지요. 때로 성숙과 극단적 미성숙이 만나 속병이 다 생겼겠지요.

 

한 두세 명은 참으로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였습니다. 충분히 배웠고, 도시물도 먹었고, 배경도 그만하면 괜찮았습니다. 나머지 사람 가운데 대여섯 명은 그저 그랬습니다.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놔두셨으면 한평생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온몸으로 뼈 빠지게 땀 흘려 근근이 먹고 살 정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나머지 두세 사람은 ‘사도단’ 가입이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부족한 사도단이었지만 인재 양성의 귀재 예수님을 만나면서 놀라운 변화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강도 높은 특별교육을 제대로 이수한 12 사도들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12 사도 각자 안에 깃들어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눈여겨보십니다. 그들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작은 사랑의 씨앗을 발견하십니다. 그 작은 가능성, 그 작은 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12 사도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느님 나라 선포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똘똘 뭉칩니다. 굉장한 응집력을 발휘합니다. 상부상조, 일치단결하여 신명나게 공동 사목을 펼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어쩌면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만히 보니 다른 형제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바라보면 볼수록 하나같이 부족하고 나약합니다.

 

때로 형제들의 부족함, 이중성, 이율배반, 극단적 이기주의 앞에 크게 실망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합니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또 괴롭습니다.

 

그러나 요즘 와서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부족하니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심하니 형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약하니 나를 통한 하느님의 도움과 위로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 이토록 부족한 우리를 통해 당신 사랑의 기적을 계속해나가시는 하느님께 그저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은혜롭게도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부족한 우리, 나약한 우리, 미처 준비되지 않은 우리를 그냥 쓰시지 않고, 당신의 합당한 도구로 쓰시기 위해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 거친 황야로 내모십니다. 원치도 않은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오랜 거듭남의 과정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키십니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생명에로의 부르심,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에로의 부르심, 결혼에로의 부르심, 사제나 수도자, 혹은 평신도에로의 부르심, 오늘이라는 선물에로의 부르심, 봉사직에로의 부르심, 리더에로의 부르심, 병고에로의 부르심, 죽음에로의 부르심...

 

주님께서는 어제도 우리를 부르셨듯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때로 큰 사건 사고를 통해서도 우리를 부르시고, 때로 한 인간 존재를 통해서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모든 부르심 앞에 보다 합당한 응답의 태도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다가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보

다 순수하게, 보다 올곧게 응답하기 위해, 더욱 우리 자신을 정화시키고 쇄신시켜나가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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