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자유게시판

고 이 운기 신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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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진신부 [yjinp] 쪽지 캡슐

2001-12-11 ㅣ No.27425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과 꽃은 지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오늘 독서(이사 40,1.6.8.)에서

 

 

= 풍장(風葬)

 

밤에 자다 홀연히 깨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

거실에 나가 벽 더듬어 불을 켜고

냉수 한 잔 마시고

공연히 달력 한 번 쳐다보고

말 않으면 모든 말 금시 말라버릴 듯

불 끄려다 석곡란에 물 주며

몇 마디 말 중얼거리다 말고

 

언제부터인가 가까이 다가오는

인간의 뒷모습

 

                 - 황동규

 

 

사제서품을 앞두고

몇 가지 필요한 준비를 하는 것 중에

빠지지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서품 기념 상본에 들어갈

성구를 선정하는 것이죠.

이 말씀은

자신이 이루어갈 사제상의

힘이 되고 채찍이 될 말씀이기에

성구 선정을 두고 모든 서품예정자는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묵상을 합니다.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은 것.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하느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오늘 독서 말씀이기도 한

이 말씀은 제가 사제 서품 기념상본에 적었던

성구이기도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또 어제 장례미사를 치룬

동창 이 운기 신부를 생각하며

이 말씀 안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명동에서의 장례미사에 참례해서

주교님의 강론을 들으며

"아, 이 신부가 참 아름답게

사제답게 살다 떠났구나."하는 생각을

새삼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16일

아주 오랜만에 모교인

혜화동 신학교를 갔었습니다.

평소 관심있는 분야의 세미나가 있어서

듣기 위해 찾아갔던 것인데

모처럼 가는 김에 아예 두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만끽했던

늦가을의 기분도 회상할 겸

낙엽 수북할 산책로를 걸어보고 싶었던 거지요.

 

한 시간 정도를 산책하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기도 피할겸

혹시 아는 신부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제 평생교육원을 들어가 봤습니다.

거기에서 신학생 영성지도를 담당하는

이운기 신부를 만났지요.

바쁜 중에 반갑게 맞아주며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난 이제 여기가 추억의 자린데,

이 신부는 아직도 삶의 자리구나..."

다음에 좀 여유있게 와서

소주나 한 잔 나누자고 약속한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었군요.

 

오늘 동창들이 모이는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더니

신학교 교수신부로 있는 다른 동창신부가 글을 올렸더군요.

여러 얘기 속에 신학교 식당의 이 신부 자리에는

흰 국화만이 놓여져 있다는...

 

기억 속에 도무지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던 사제,

그래서 아마도 사제로서는 특이하게

사람들에게 상처준 일이 없었을 것만 같은 사제가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듯 싶습니다.

 

오래전 제가 택한 성구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먼저 살다간

그 사제의 삶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를 위한 기도를 바쳐봅니다.

 

 

 

혹 누군가

자신이 꿈꾸는 삶을 대신하듯 채워주는

사제나 소중한 분들이 주변에

분명 계실 겁니다.

오늘 기도 중에는

그분들을 기억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군요.

 

 

 

오늘 노래는 생활성가를 참 좋아했던 사제

특히 신상옥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이운기 신부를 위한 곡으로 올려봅니다.

 

삽입곡   '소나무'

 

            글곡 채순기  노래 신상옥 유승훈

 

하나가 슬픔에 잠길 때 눈물 흘리는건 다른 또 하나

하나가 맘이 시려울 때 오직 필요한건 또 하나의 눈빛

빛이 없으면 사라지는 그림자로는 모자라

내가 부르는 너의 이름은 단 하나의 불씨

우리의 소중한 만남을 기억하는 의미로

서로의 가슴 속에 심은 소나무 한 그루

우리 모습 세월따라 가을 빛으로 변해가도

언제까지나 길이 푸르리라

 

하나가 손이 시려울 때 오직 필요한건 또 하나의 입김

하나가 기쁨에 넘칠 때 웃음짓는 것은 다른 또 하나

빛이 없으면 사라지는 그림자로는 모자라

내가 부르는 너의 이름은 단 하나의 불씨

우리의 소중한 만남을 기억하는 의미로

서로의 가슴 속에 심은 소나무 한 그루

우리 모습 세월따라 가을 빛으로 변해가도

언제까지나 길이 푸르리라

언제까지나 길이 푸르리라

 

 

 

첨부파일: 소나무.ram(60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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