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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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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1-03-05 ㅣ No.145045

탕자의 비유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인 오늘 우리에게 더없이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무시하고 막나가던 둘째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리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걸로 만사 OK였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치 밥먹듯이 일상적으로 소소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그뿐이 아니라 가끔씩 묵직한 죄들도 서슴치 않고 짓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탕자의 비유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은 반드시 기쁜 소식으로 전해져야 마땅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앙은 지극히 낙관적인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가 비록 죄인이어도 하느님 눈에는 그저 안쓰럽고 딱해보입니다. 측은해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사랑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존재의 원천이요 근간입니다. 비록 우리가 합당치 않은 존재이지만 언젠가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서 그분께서 주관하시는 천상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 잔치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젠가 착하기만 하지 의지가 약한 한 형제가 마땅히 갈 곳 없다며 취직자리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 형제를 돼지 치는 농장에 소개시켜드렸습니다. 월급도 그만하면 괜찮고, 시골이라 돈 쓸 일도 없고, 금방 돈 모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웬걸, 사흘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신부님, 저 여기서 도저히 일 못하겠어요. 냄새 때문에 돌아버리겠어요.”제발 조금만 더 견뎌보라는 말에 그 형제는 제게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신부님이 여기 와서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해보고, 그런 말 하라구요!”

 

그래서 저는 농장을 한번 찾아가봤습니다. 막상 가보니 돼지 치는 농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더군요. 그 형제에게 주로 맡겨진 일은 하루 온 종일 돼지들이 생산해내는 막대한 배설물들을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잠깐 머물렀는데도 강력한 냄새에 금방 정신이 어질어질해졌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작은아들 역시 지니고 있던 막대한 돈을 다 탕진해버리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돼지 치는 농장에 취직했습니다. 작은아들이 돼지 치는 농장에서 주로 한 일 역시 매일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배설물들을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도높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도 주어지지 않았을뿐더러, 기본적인 끼니조차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작은아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굶어죽겠구나. 정말 염치없고 면목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아버지께 돌아가자!’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아들의 몰골은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씻기나 했겠습니까? 땀 냄새, 돼지 배설물 냄새, 별의 별 냄새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신발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맨발입니다. 머리카락은 산발에다 떡진 머리입니다.

 

옷은 갈아입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도 기억 못합니다. 거지 중의 상거지꼴이었습니다. 그를 보는 사람마다 다들 코를 움켜쥐고 멀찌감치 피해갔습니다. 그가 지나가고 나면 다들 투덜거렸습니다. “저게 사람이냐, 짐승이냐?”

 

아버지 집 가까이 이르러서는 따가운 눈총들이 더 심했겠지요. “야, 저게 누구냐? 천하에 몹쓸 작은아들 아냐? 꼴좋다! 불효자식 같으니라구! 빈대도 낯짝이 있지. 그러고도 지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다들 한 목소리로 둘째 아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쌍욕을 해댔겠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유일하게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왜 그랬냐?’고 따지지도 않았습니다.‘그러고도 네가 인간이냐?’며 다그치지도 않습니다. ‘돈 얼마 남았냐?’며 호주머니를 뒤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말없이 있는 힘을 다해 작은아들을 자신의 품에 끌어 앉았습니다.

 

한 손으로는 ‘내 이제 더 이상 너를 놓치지 않겠노라!’며 작은아들을 꼭 붙들었습니다. 다른 한 손으로는 ‘괜찮다, 다 괜찮다! 너만 살아 돌아왔으면 다 괜찮다!’며 토닥토닥 작은아들의 등을 두드렸습니다. 보십시오. 자비하신 우리 하느님의 얼굴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장면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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