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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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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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2-06-26 ㅣ No.155931

220626. 연중 제13주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함당하지 않다.”(루카 9,62) 

 

오늘은 연중 13 주일이며, 교황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의 주제는 부르심과 응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이 부르심과 응답의 과정, 아니 끊임없는 부르심과 응답으로 이루어진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1독서>는 예언자 엘리야가 엘리사를 후계자로 부르는 장면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기 겉옷을 걸쳐주며, 예언자 직분과 권한과 능력을 전해줍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먹게 하고, 엘리야를 따라나섭니다. 그야말로 다시는 그 일터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위해 모두를 버리고 따라나섭니다.   

 

<제2독서>는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으니, 육의 욕망을 채우기보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칩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습니다.”(루카 9,51).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고, 야고보와 요한이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예수님과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제자들의 못난 마음을 봅니다. 혹 우리도 우리를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보복하려는 못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이어서, 제자들의 부르심에 대한 내용을 전해주는데, <제1독서>와는 대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급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하시며 내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당신을 따르도록 부르셨는데, 그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60)하시고, 또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이에게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함당하지 않다.”(루카 9,62)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당신을 따라나서겠다는 사람을 내치시는가 하면, 당신이 부른 이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도 허락하지도 않으시고,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왜 일까요?   바로 여기에 참된 제자 됨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는 첫 번째의 사람을 내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낮고 겸손한 진정한 제자의 삶에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또 당신이 부르신 이가 ‘먼저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고자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당신을 따르는 삶은 죽음의 나라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느님 나라의 삶임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하는 것을 거절하신 것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는 말씀이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그를 “하느님 나라”로 부르시며,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자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예수님이 제시하고 계시는 “하느님 나라”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당신을 따르겠다는 나선 첫 번째 사람을 통해서는 하느님 나라는 섬김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임을 말해줍니다. 곧 당신을 따르는 길이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낮고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삶임을 드러내줍니다.  

 

당신이 부르신 두 번째 사람을 통해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은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죽은 이들의 나라가 아니라 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선포하는)일임을 말해줍니다.   

 

당신이 부르신 세 번째 사람을 통해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은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쟁기를 가는 일임을, 곧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이 당신을 따르는 제자의 길임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 곧 부르심 받은 이가 가야 하는 길, 그것은 부르신 분이 선사하시고 함께 이루시고자 하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자 되는 길임을 말해줍니다. 하오니, 주님! 제 손이 당신 말씀의 쟁기를 잡고, 당신 나라의 밭을 갈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주님! 당신은 저의 탯줄, 저의 보금자리, 저의 무덤이오니 제 머리가 항상 당신 가슴에 기대어 있게 하소서. 제 몸이 당신 밭에 머물게 하소서. 제 손이 당신 말씀의 쟁기를 잡고 진리의 밭을 갈게 하소서. 아멘.  

 

(이 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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