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건강ㅣ생활ㅣ시사용어 건강상식ㅣ생활상식ㅣ시사용어 통합게시판입니다.

존재지향의 인간과 소유지향의 인간

스크랩 인쇄

박남량 [narcciso] 쪽지 캡슐

2016-09-19 ㅣ No.3840

 


존재지향의 인간과 소유지향의 인간


인간은 세계와 자신의 존재의미를 밝혀주고 자신이 세계에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할지를 지시하는 지향을 틀을 갖고자 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rmm 1900 - 1980)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두 종류의 지향의 틀을 이야기한다. 존재지향은 세계와 하나가 되는 실존을 말하고 소유지향은 대상화된 객체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존재지향의 사람들은 단지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움, 기쁨, 행복을 느낀다. 길가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낀다. 그 꽃이 반드시 내 방 안에 꽂혀 있어야 한다거나 내 정원에 피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소유지향의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것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것이어야 한다. 내가 소유하고 지배하고 군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수 없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피어 있는 꽃이 아름다우나 아름답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꽃이 내 것이냐 네 것이냐만이 문제될 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도 존재지향의 사람들은 그녀와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면 그러한 조건을 받아들인다. 또는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유지향적인 사람은 그녀와 잠자리를 하거나 함께 지내거나 결혼을 하거나 어쨌든 내 것으로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의 마음은 늘 소유와 지배의 욕망으로 시달린다.

현대인은 존재지향의 태도가 소유지향의 태도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인간 소외가 바로 소유지향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하며 주체와 객체를 모두 사물화하는 폐단을 낳는 소유지향을 극복하라고 설파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지향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소유와 존재는 당초부터 윈윈이 불가능한 모순관계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소유과 존재를 함께 취할 수는 없다. 결국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404 0

추천 반대(0) 신고

존재지향의 인간,소유지향의 인간,시사용어,시사상식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