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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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살레시오회 : 먼저 떠납니다. 천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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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2021-09-18 ㅣ No.149833

천주교 박해시대 당시 조선이란 땅은 동방 선교사들에게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100% 죽음이 확실한 사자굴과도 같은 선교지가 조선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에 선교를 지원했던 서방 선교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조선으로 입국했지요.

  

조선으로 떠나기 직전 선교사들은 죽음 준비 작업을 하였습니다. 아쉽고 송구스런 마음을 겨우 달래며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작별 편지를 말입니다. 편지지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윽고 떠나기 직전입니다. 동료사제들, 주교님께 마지막 하직 인사를 올립니다. 아무런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승에서는 마지막이 될 깊고 힘찬 형제적 포옹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서로 말없이 바라보며 고개만을 끄덕이며 마지막 눈인사를 주고받습니다.

  

“먼저 떠납니다. 천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래요. 먼저 가세요. 저도 준비되는 대로 뒤따르겠습니다. 꼭 뜻을(순교) 이루길 바랍니다.”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선교사들의 조선행(朝鮮行)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무죄한 어린 양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았던 모든 선교사들의 길은 오직 처절한 십자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길과 같습니다.

  

이런 선교사들에게서 사제수업을 받으셨던 김대건 신부님 역시 동방 선교사들의 전통과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 입국 역시 목숨을 건 길, 일단 들어오면 100%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꿈결에서 조차 그리웠던 고국산천, 입국을 위해 그 숱한 나날들을 기다려왔던 조국인데, 이제 그 고향 땅에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참한 죽음이라니…. 참으로 비극적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박해가 가라앉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국할 수도 있었습니다. 박해의 세월이 지나가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학문을 공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입국을 뒤로 좀 미루고 중국에서 사목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 뇌리에는 오직 목자 없이 길 잃고 방황하는 동포들의 고통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목자가 없어 서러운 민중들 한가운데로 한시라도 빨리 투신할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김대건 신부님과 동료 순교자들처럼 죽기 살기로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평소보다 좀 더 희생하고 좀 더 자신을 죽이는 '작은 순교'를 실천하는 날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 시대, 피를 요구하는 절박한 순교상황은 맞이하기 어렵습니다. 순교 기회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순교자 후예로서 어떤 방식으로 순교 영성을 살아야 할까요? 일상(日常)에서 순교입니다. 매일 고통과 십자가를 기꺼이 견뎌내는 일입니다. 매일 좌절과 방황을 훌훌 털고 일어서는 일입니다.

 

이 시대 순교는 병인박해나 기해박해와 같은 대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하느님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이나 시련을 기쁘게 참아냄으로써 가능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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