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우리본당자랑 우리본당의 사제ㅣ수도자ㅣ이웃ㅣ가족들을 자랑할수 있는 통합게시판입니다.

가슴속에 묻혀있는 향수를 꺼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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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완 [raph] 쪽지 캡슐

1998-10-25 ㅣ No.40

어느 덧 불혹의 나이를 지나 옛일을 생각해 보니 기억속에서 그려지지도 않는 신부님으로부터 얼마 전 떠나가신 신부님까지 참으로 많은 신부님들과 만났었다.

호랑이같았다고 기억나는 故 조인원신부님, 나에게는 참으로 자상하셨던 故 조인환신부님, 어느 날 훌쩍 로마로 떠나서 그곳에 눌러 앉으셨다는 박양웅신부님-박신부님은 우리에게 국가대표 탁구선수였던 강현숙선수를 불러다 한 수 배울 기회까지 주셨고, 불광동으로 찾아갔을 때는 아직 학생이었던 우리에게 꼬냑이 섞인 커피를 맛보게 해주셨으니 아!-

어렵고 두려웠던 최창화신부님, 최신부님이 떠나신다는 것을 알고 그날 한 무리의 학생들을 이끌고 새로 오실 나원균신부님을 찾아 대방동성당을 다녀 왔던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부끄러웠던 일 중의 하나다.

나신부님과의 일들은 교회 안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뿌듯한 추억을 갖게하였다. 6박7일의 여름캠프는 학생 스스로가 장소선택과 캠프설치 등 지금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자유로움과 책임감으로 이루어진 행사였다. 물론 예술제도 당시에는 교회내에 공고학생들도 다수 있어 스스로 무대설치를 할 수 있었으니 지금처럼 어른들이 만들어 주는 혜택이 하나 없어도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아 당기니 너무도 황홀한 아침이 되고 있다. -지금 시간은 오전 8시경-아직도 사목현장에서 건재함을 보여주시는 유영도신부님,건강하세요.

음악으로 우리를 이끄시던 백남용신부님, 백신부님은 이곳에 계시면서 음악대학을 다니셨는데 그 과정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전해 오고 있다.

지금은 지구장신부님이시지만 나한테는 꽥꽥이신부님(죄송합니다)으로 기억되는 곽성민신부님, 칼잡이 김종국신부님-그 커다란 덩치의 수단밑에 아이들을 숨기고 노셨다는 것을 지금 같이 사시는 교우들은 아실까 모르겠다. 인자한 얼굴만이 기억나는 이원규신부님.-아, 이신부님과는 어느 추운 겨울 피정을 같이 다녀왔다. 그 겨울에 난 한 시간이나  비를 맞고 뼈 속까지 젖는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로 인해 비를 사랑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나만큼이나 비를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으며 아이를 낳기도 전에 남녀의 구분도 모르면서 이름을 지었다. 착한 비(善雨)-

내 기억 속에는 전혀 무섭지도 않은 남국현신부님-요즈음 사람들은 그 분을 남팔뚝이라 부른다나-

결혼 주례를 서주신 안경렬신부님,지금은 지구장신부님이 되셨으니 더욱 바빠지셨으리라.

아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차인현신부님, 가까이 가고 싶었던 마석성당 시절의 한만옥신부님, 한 번 실컷 이야기 나누고 싶은 김정남신부님, 밤새워 술마시고 우정을 쌓았던 이철학신부님, 김영석신부님, 걱정이 앞서는 박종성신부님, 잘살고 계실 윤성호신부님, 김상국신부님,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이승익신부님, 그래도 건강히 제 길을 걸으시는 이영우신부님, 목발을 짚고도 허허 거리는 이영재신부님.

그 모든 분들을 오늘 아침에 생각하며 작은 기도를 바친다. 성당 마당에서 컸다고 나를 생각한다. 그 모든 추억들을 아름답게 간직하며 비록 만나지 못하더라도 항상 그 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 빠진 것이 있구나.같이 뛰놀던 00본당의 이홍근신부님-건강합시다.

후배인 김동훈신부님도 건강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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